‘파묘’부터 ‘케데헌’까지 세계를 홀린 한국 귀신 K오컬트가 새로운 장르로 떠오르고 있다. 자연과 인간, 신이 함께 존재하는 문화유산을 체험하는 여정, 한국의 K오컬트 여행을 소개한다.
글 전경우 여행작가
백두대간의 산신령이 머무는 곳이라고 불리는 설악산의 비경. 사진 제공_한국관광공사
‘K오컬트’라는 영화 장르가 있다. <파묘>, <킹덤>, <곡성> 같은 작품들이 대표적이다. ‘오컬트(Occult)’는 숨겨진 것에 대한 탐구라는 뜻이다.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혹은 검증될 수 없는 초자연적이거나 신비적인 것들에 사람들은 흥미를 느낀다.
우리 선조들은 산에는 산신이, 바다에는 용왕이 있다고 믿었다. 오래된 나무, 큰 바위에는 신령한 기운이 있다고 생각해 신성하게 여겨 왔다. 오늘날 무속을 비롯한 민간 신앙은 단순한 미신이 아닌, 한국인의 삶과 정서를 이해하는 열쇠다.
‘K오컬트’는 무속과 설화가 중심이다. 한국의 무속신앙은 다른 문화권과 구별되는 특징이 뚜렷하다. 불교와 유교, 도교를 비롯해 근현대에 기독교가 전래된 이후에도 무속은 배척되지 않고 오히려 융합과 변화를 거듭하며 독특한 종교문화를 형성했다. 불교 사찰의 산신각, 유교 제례 속 비보신앙이 그 예다.
불교 사찰에 산신령이 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불교 명찰은 산중에 있다. 산에 살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산의 주인은 산신령이라 여겼다. 국내 주요 사찰에는 산신령을 모시는 건물, 삼성각(三聖閣)이 있다. 산신(山神)·칠성(七星)·독성(獨聖)을 함께 모신 경우를 삼성각이라 하며, 각각 따로 모셨을 때는 산신각, 칠성각, 독성각이라 한다.
절집 탱화로 만나는 산신령은 옆에 호랑이를 거느리고 있는 모습이다. 우리의 토속신인 산신이 불교에 흡수된 것이다. 한국의 산신령 신앙은 자연과 인간의 조화, 그리고 마음의 평화를 기원하는 정신문화로 해석해야 한다.
정읍 내장산 _ 전북 정읍의 내장산은 ‘신령한 산’으로 불린다. 내장사 뒤편 산신각에는 수염이 길고 눈빛이 강한 노신의 산신상이 모셔져 있다. 매년 가을 단풍철이면 수많은 순례객이 찾아와 산신께 안전과 소원을 빈다.
정읍 내장산 산신각
평창 오대산 _ 강원도 평창의 오대산은 산신신앙과 불교의 융합을 상징하는 산이다. 월정사 산신각에는 노신과 호랑이를 함께 그린 산신도가 걸려 있으며, 불자와 무속인 모두 산신기도를 올린다. 오대산 산신은 ‘문수보살의 화신’으로 여겨져 지혜와 깨달음의 신으로 숭배된다.
진천 보탑사 _ 진천 보탑사는 고려시대 절터에 90년대 창건한 젊은 사찰이지만 특별한 모습의 산신각이 있어 들러볼만하다. 귀틀집 형식으로 지은 보탑사 산신각은 너와 지붕을 얹어 산신령의 거처에 걸맞는 신비로운 모습이다.
대구 팔공산 _ 팔공산은 불교 사찰과 무속신앙이 공존하는 ‘영험한 산신령이 깃든 산’으로 알려져 있다. 동화사· 파계사·은해사 등에 모두 산신각이 있고 매년 정월대보름에 ‘팔공산 산신제’가 열린다.
공주 계룡산 _ 공주 계룡산 신원사 대웅전 뒤편에 자리잡은 산신각은 조금 특별하다. 일명 중악전(中嶽殿) 또는 계룡단(鷄龍壇)이라고 하는데, 현재 남아 있는 이 제단은 1879년(고종 16)에 재건한 것으로 조선왕실이 특별하게 관리하던 곳이다.
공주 신원사 중악단
보은 속리산 _ 충북 보은 속리산의 산신제는 지역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행사다. 속리산의 주봉인 천왕봉(해발 1,058m) 꼭대기에서 제사를 지내는것 부터가 보통 정성이 아니다. 이후 위폐를 모시고 내려와 다음날 속리산 잔디공원에서 산신제를 올린다. 이 행사는 2020년부터는 국가유산청의 예산 지원을 받으며 국가적인 유산으로 인정받게 됐다. 조선시대 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해마다 10월 범(寅)일을 택해 속리산 인근 주민들이 천왕봉의 산신을 모시는 제를 지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강원도 설악산 _ 설악산은 ‘백두대간의 산신령이 머무는 곳’이라 불린다. 옛 기록에 따르면 설악산 산신은 백호(白虎)를 타고 다니며 나라의 안녕을 지켰다고 전해진다. 속초 신흥사의 산신각에는 흰 수염의 노신으로 묘사된 산신상이 모셔져 있고, 매년 봄·가을이면 무속인과 불자들이 산신제를 올린다. 봉정암, 울산바위, 토왕성폭포 일대도 산신령이 수행하던 신령한 장소로 전해진다.
산신령의 수행처 설악산 토왕성폭포
지리산 _ 예로부터 ‘신의 산’으로 불린 지리산은 천왕봉을 중심으로 한 일곱 봉우리가 각각 신령이 거처하는 신단으로 여겨졌고, 산 전체가 신앙의 공간이었다. 하동 쌍계사와 남원 실상사, 함양 칠선사에는 모두 산신각이 있으며, 무속인들이 기도처로 찾는 대표 명산이다. 매년 음력 3월 삼짇날에는 ‘지리산 산신제’가 열린다.
신의 산으로 불려온 지리산
강릉 노추산 _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 노추산 자락에 가면 3,000개의 돌탑이 서 있는 신비로운 풍경을 마주하는데, 이곳은 ‘산신령 출몰 명소’로도 여겨진다. 탑골을 만든 이는 차순옥 할머니로 2011년 향년 68세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무려 26년간 이곳에서 돌탑을 쌓았다. 이후 TV 프로그램을 통해 입소문이 나면서 이곳은 모정탑길로 불리게 됐다.
강릉 노추산 돌탑들
제주에서 찾은 신(神)의 흔적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남자 주인공 양관식의 할머니는 무당이었다. 이 드라마를 봤다면 제주에서 무속인의 사회적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 것이다. 여성 중심의 영적 문화는 K무속의 특이한 부분인데, 제주에서는 그 특성이 현대까지 전해지고 있다. ‘만신(巫)’이라 불리는 여성 무당은 공동체의 치유자이자 예언자였다.
구좌읍 송당 본향당 _ 제주도 구좌읍 비자림 인근에 있는 작은 마을 송당에는 2009년 제주시가 선정한 제주시 숨은 비경 31에 포함된 송당 본향당이 있다. 이곳에서는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굿과 마을제를 지내는데, 한 해에 4번의 제를 치른다. 외지인은 이날만 들어갈 수 있다.
제주 송당마을 본향당에 걸린 소원글
영등할망신화공원 _ 한림읍 귀덕1리 영등할망신화공원은 영등할망을 비롯한 다양한 스토리를 지닌 석상을 마주할 수 있는 공간이다. 과거 제주 사람들이 해상 안전과 풍요를 가져다주는 신이라고 믿었던 영등할망과 관련된 신화를 엿볼 수 있다.
제주 영등할망신화공원
당케포구 _ 올레 4코스 표선에 위치한 당케포구는 제주의 창조신인 ‘설문대할망’에게 넋을 기리는 곳이다. 예부터 표선 앞바다는 수심이 깊어 폭우가 몰아치면 파도가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곤 했다. 이에 마을 주민들이 신에게 소원을 빌자 하루 사이에 바다를 메운 포구가 만들어졌다는 전설이 전해져 오는데, 이를 ‘당케할망의 전설’ 이라고 한다.
제주 당케포구
금산공원 _ 제주 남자들은 따로 신을 모셨다. 제주시 애월읍에는 ‘금산공원’이라 불리는 약 2만평의 울창한 상록수림이 있고, 숲길 안쪽에는 마을 제사를 올리는 ‘포제단’이 중심을 잡고 있다. 포신(인물·재해를 다스리는 신)과 토신(마을 수호신), 서신(홍역·마마 신) 신위를 모신 세 개의 돌제단이 있으며, 이곳에서 음력 정월 초정일(初丁日)에 제를 올린다.
신령한 물길을 따라, 한국의 ‘용왕신앙’ 명소
옛 사람들은 바다와 강, 샘물에 ‘용왕’이 산다고 믿었다. 하늘의 비를 내리고 바다의 풍랑을 다스리는 용왕은 한국 무속의 핵심 신격 중 하나로, 어민과 농민 모두의 신앙 대상이었다. 오늘날에도 전국 곳곳에는 용왕당과 용왕제, 샘굿이 남아 있어 물과 인간의 공존을 상징한다. 불교에서도 용왕을 발견할 수 있는데, 하늘과 비를 관장하는 역할을 하는 호법신장(護法神將)들 중 하나다.
울산 대왕암공원 _ 울산의 대왕암공원은 바다와 기암괴석이 만들어낸 절경뿐 아니라, 오랜 세월 전해 내려오는 용왕신화로도 유명하다. 대왕암은 바다의 수호신, 용왕이 깃든 성스러운 바위로 여겨졌으며, 예부터 어민과 주민들은 풍어와 안전을 기원하며 제를 올렸다.
울산 대왕암공원의 성스러운 바위
속초 영금정 _ 속초 바닷가의 바위 언덕 위, 파도에 씻긴 ‘영금정(靈琴亭)’에는 동해의 용왕을 모신 속초 영금정 용왕당이 자리한다. 매년 정월대보름이면 바다에 제를 올리는 ‘영금정 용왕제’가 열려 어민과 주민이 풍어와 안전을 기원한다.
태종대 용왕당 _ 부산 영도의 태종대 절벽 아래에는 태종대 용왕당이 있다. 어민들이 배를 띄우기 전 제를 올리며 ‘용왕님, 오늘도 바다를 지켜주소서’라고 빌던 곳이다.
부산의 해동용궁사
경남 사천 비토섬 _ 경남 사천에는 토끼전 설화가 생각나는 비토섬이 있는데, 최근 예능 프로그램 ‘나혼자 산다’에 나오며 유명해졌다. 토끼섬, 거북섬, 별학섬 등이 있으며 제일 큰 섬을 두고 토끼가 비상하는 형상이라 해 비토리라 부른다.
‘우영우 나무’를 아시나요
경남 창원시 의창구 대산면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팽나무다. 이 나무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방영 이후 동네 스타가 됐고 천연기념물 타이틀까지 생겼다.
‘우영우 나무’는 한국 전통 마을에서 ‘당산목(堂山木)’으로 여겨지던 팽나무의 상징성을 잇는다. 당산목은 신령이 깃든 나무로, 옛 사람들은 이 나무가 마을의 액운을 막고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준다고 믿었다.
우영우 팽나무로 유명한 당산목
하회마을 느티나무 _ 안동 하회마을의 심장부에는 수령이 600년이 넘는 울창한 느티나무가 자란다. 마을 입향조인 류종혜가 심은 나무다. 정월대보름 밤에 마을의 안녕을 비는 동제를 삼신당과 국사당에서 지내고 다음날 아침 이곳에서 하회마을과 한국탈춤을 대표하는 하회별신굿탈놀이가 시작된다.
부안 내소사 들당산 _ 전북 부안 내소사 스님들과 인근 입암마을 주민들은 매년 내소사 경내의 들당산(일명 할머니 당산나무, 수령 약 1,000년)과 일주문 앞 날당산(일명 할아버지 당산나무, 수령 약 700년)에서 당산제를 지낸다. 사찰과 마을의 안녕 및 번영을 기원하는 행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