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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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으로 떠나는

피서여행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는 7월의 여행지로 계곡만한 곳이 또 있을까. 차가운 물에 발을 담그며 더위를 쫓아내는 탁족만으로도 온몸이 시원해진다.

문유선 여행작가

  • 맑은 계류와 기암괴석이 아름다운 평창의 장전계곡

여행의 고수들은 여름 여행지로 바다보다는 계곡을 높게 쳐준다. 더위를 피해 떠나는 ‘피서여행’이라면 시원한 곳을 찾아가는 것이 당연한 이치. 깊은 산속 계곡은 8월 삼복더위에도 끈적거리지 않고 쾌적하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국토의 절반 이상이 산지다. 계곡은 산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
얼음장같이 차가운 계곡물에 발을 담그는 ‘탁족’은 전통적으로 선비 계층이 즐기던 피서법이다. 선비들은 몸을 노출하는 것을 꺼려 차가운 물에 발을 담그며 더위를 쫓아냈다. 발바닥에는 온몸의 신경이 집중되어 있어 탁족을 하면 어느덧 온몸이 시원해진다. 탁족은 피서법일 뿐만 아니라 정신 수양의 수단이기도 했다.
탁족이라는 용어는 유가에서 유래했다. “맹자의 창랑의 물이 맑음이여 나의 갓끈을 씻으리라. 창랑의 물이 흐림이여 나의 발을 씻으리라(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한 구절에서 따온 말이다. 또한, 탁족은 자연과 벗 삼아 유유자적한다는 도가적인 속성도 있는 고차원적인 행위다. 얼음처럼 차갑고 수정같이 맑은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시원한 수박 한입 베물면 신선이 따로 없다.

  • 괴산에서 가장 깊은 골을 자랑하는 갈론구곡. 1980년대까지는 자전거도 들어오기 어려웠던 청정지역이다.
‘계곡여행 1번지’, 괴산의 ‘구곡’ 문화

구곡은 중국의 ‘무이구곡(武夷九曲)’에서 이름을 따온 우리나라 선비 문화다. 전국의 이름난 명승지에는 물이 흐르는 곳마다 거의 ‘OO구곡’이라 명명한 곳이 흔하다.
충북 괴산은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이 만나는 지점에 있는 청정지역이다. 괴산의 ‘괴(槐)’는 느티나무, 회화나무라는 뜻이다. 괴산의 계곡에는 ‘역사’가 흐른다. 계곡의 규모는 작지만 송시열 등 역사와 관련된 유적지가 많아 사뭇 다른 느낌을 갖게 된다.
우암 송시열(1607~1689년)은 일찍이 괴산의 진가를 알아봤다. 괴산에서 가장 유명한 여행지 화양구곡 주변이 그가 고른 ‘명당’이다. 화양구곡의 시작점인 경천벽에서부터 마지막 파천까지 걸어가는 계곡 산책길은 경사가 완만해 ‘저질체력’인 여행자에게 딱 맞는 여행지다. 넓게 펼쳐진 반석 위로 맑은 물이 흐르고, 주변의 울창한 숲이 장관을 이룬다. 송시열의 글씨가 새겨진 경천벽을 지나 금사담, 첨성대, 능운대, 와룡암과 학소대를 거쳐 깨끗하고 반듯한 흰 바위 위로 맑은 계곡물이 스치듯 지나가는 파천에 다다른다. 계곡 산책로 길이는 3.1km며 중간에 식당들이 많이 있다.
이중환의 ‘택리지’를 보면 선유구곡을 칭송하는 내용이 나온다. 화양동 계곡과 함께 ‘금강산 남쪽에서는 으뜸가는 산수’라고 적혀 있다. 화양구곡이 남성적이라면 선유구곡은 여성적이다. 선유동 계곡 입구에서 출발, 구곡 중 1곡인 선유동문을 시작으로 2곡 경천벽, 3곡 학소암을 차례대로 만나고 연단로, 와룡폭, 난가대, 기국암, 구암을 지나 9곡인 은선암을 끝으로 계곡 상류인 후문을 빠져나가면 517번 지방도로를 만나게 된다. 모든 구간 차량으로 진입이 가능하며, 중간에는 휴게소가 있다. 연단로의 거대한 바위는 원시적인 아름다움이 압권이다. 내비게이션에 청천면 관평리를 찍고 찾아가면 된다.
쌍곡구곡은 괴산에서 연풍 방향으로 12km 지점의 칠성면 쌍곡마을로부터 제수리재에 이르기까지 10.5km의 구간에 호롱소, 소금강, 병암(떡바위), 문수암, 쌍벽, 용소, 쌍곡폭포, 선녀탕, 장암(마당바위) 등으로 이뤄져 있다. 보배산, 칠보산, 군자산, 비학산의 웅장한 산세에 둘러싸여 있고, 계곡을 흐르는 맑은 물이 기암절벽과 노송, 울창한 숲과 함께 조화를 이룬다. 소금강은 쌍곡구곡 중 가장 아름다운 절경을 자랑하는 곳으로 마치 금강산의 일부를 옮겨놓은 듯 하다 하여 소금강이라 불린다. 517번 지방도와 인접한 곳에 휴게소가 있고, 바로 아래 계곡이 있어 접근성이 뛰어나다.
갈론구곡은 골이 깊기로 소문난 괴산에서도 가장 깊은 곳이다. 주변 마을은 80년대까지는 자전거도 들어오기 어려웠던 청정지역이다. 갈론마을을 지나 2~3km남짓 계곡을 따라 거슬러 가면서 펼쳐지는 비경이 갈론구곡이다. 입구에 펼쳐진 개망초 군락지가 무척 아름답다. 신선이 내려왔다는 강선대를 비롯해 장암석실, 갈천정, 옥류벽, 금병, 구암, 고송유수재, 칠학동천, 선국암이 9곡을 형성한다. 내비게이션에 칠성면 사은리 67번지를 찍고 가면 된다.

금강산의 일부를 옮겨놓은 듯한 소금강
  • 계곡을 흐르는 맑은 물이 인상적인 괴산의 쌍곡구곡
  • 괴산 선유구곡에서 만나는 거대한 바위들
  • 넓게 펼쳐진 반석이 웅장함을 주는 괴산 화양구곡
계곡 숫자가 무려… 평창 계곡 시리즈

평창은 넓다. 전국 군 단위 기초지자체 중 3번째로 넓은 지역이다. 끝에서 끝까지 가려면 1시간이 더 걸린다. 태백산맥을 동쪽에 두고 서남쪽으로 뻗은 차령산맥 사이에 위치한 평창은 북쪽으로는 오대산, 계방산, 두루봉, 가리왕산이 솟아 있고 서쪽에는 태기산, 백덕산의 능선이 홍천과 횡서의 경계를 이루며 남쪽은 영월과 맞닿아 있다.

대부분의 지역이 산악으로 이뤄진 만큼 계곡의 숫자와 이름은 헤아리기 어렵다. 도시 사람들에게 유명한 계곡 이름을 열거해 보면 흥정계곡, 금당계곡, 뇌운계곡, 수항계곡, 막동계곡 등 끝도 없이 나온다. 계곡의 숫자가 워낙 많은 만큼 여름 성수기에도 다른 지역 계곡에 비해 한적한 편이다.
뇌운계곡의 지류인 원당계곡은 기암괴석 사이로 흐르는 맑은 물과 숲 그늘이 좋은 한적한 피서명당이다. 상류쪽은 느릅나무가 많이 자생했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는 느릅골이라 부르기도 한다. 조금 아래쪽 하일계곡은 텐트를 치기 좋은 곳이 곳곳에 있어 계곡 캠퍼들이 즐겨 찾는다.
정선으로 넘어가는 길에 나오는 장전계곡은 맑은 계류와 숲,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멋스런 풍경이 일품으로 오대천을 향해 흐르는 계곡 중 최고로 꼽힌다. 계곡 최상류에 자리한 이끼계곡이 절경이다. 가리왕산 이끼계곡의 진부애기나리 외 21종의 식물이 유전자와 종 보전을 위한 산림유전자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평창의 장전계곡 상류에서 이끼계곡을 만날 수 있다.
  • 맑은 물이 흐르는 원당계곡
  • 계곡 캠퍼들이 즐겨찾는 뇌운계곡
여기 우리나라 맞아? 삼척 덕풍계곡

‘우리나라 마지막 비경’, ‘최후의 오지’같은 수식어는 결코 허명이 아니다. 이런 여행지는 주말이나 휴가철에는 그나마 사람이 몰리는 편이지만, 평일에 찾아가면 호랑이라도 나올 것 같은 적막함이 감돈다.
삼척 덕풍계곡과 태백산 자락 금대봉 같은 곳은 90년대까지만 해도 심마니, 전문산악인이 아니면 엄두도 못 냈던 오지로 쳤다. 지금은 탐방로가 정비되며 접근성이 크게 높아졌다.
덕풍계곡은 우리나라 ‘3대 계곡’, ‘5대 계곡’을 따질 때 빠지지 않는 곳이다. 설악산 천불동 계곡, 한라산 탐라계곡, 지리산 뱀사골 계곡 등과 함께 손에 꼽힌다.
‘용소’라고 불리는 곳은 전국에 수 천개 존재하지만 덕풍계곡에 있는 3곳의 용소는 격이 다른 신비감을 준다.
전설에 따르면 서기 약 650년경 신라 진덕여왕 때 의상조사가 이곳에 이르러 나무 기러기 세 마리를 만들어 날리니 한 마리는 울진 불영사에, 또 한 마리는 안동 홍제암에, 마지막 한 마리는 덕풍계곡에 떨어졌다. 기러기가 떨어지니 천지개벽이 일어나 용소에서 용이 하늘로 치솟으며 지금의 덕풍계곡 지형이 기이하게 바뀌게 됐다고 한다.
금강송 군락지로 유명한 응봉산 자락, 삼척시 가곡면 풍곡안길 등산로 입구를 찾아가는 것이 덕풍계곡 탐방의 첫 순서다. 덕풍마을에서 출발해 제1용소까지 가는데 40분(2km), 여기서 1시간(2.4km)을 더 올라가면 제2용소가 나온다. 제3용소는 탐방제한구역으로 묶여 있다.
덕풍계곡이 다른 계곡과 차별화되는 부분은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물빛이다. 용소 바닥에 가라앉은 낙엽에서 우러난 타닌 성분 탓이다. 탐방로 곳곳에 발을 담글 수 있는 지점들이 즐비하며, 용소 부근에도 쉴만한 너럭바위가 있다. 협곡인 탓에 비가 많이 오면 갑자기 물이 불어날 수 있으니 항상 주의해야 한다. 출발지점에 있는산장에 백숙 등을 미리 주문해 놓는 것이 편하다.

삼척 덕풍계곡은 우리나라 3대 계곡에 꼽힌다.
  • 탐방로가 잘 갖춰진 삼척 덕풍계곡의 초입
  • 덕풍계곡은 황금빛 물빛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사진제공 = 지엔씨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