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6월호

Quick menu

TOP

OUR STORY

만나러 갑니다

  • HOME OUR STORY 만나러 갑니다

44년 장수기업 이끈 1세대 주택건설인
미래세대 도움되는 기업가로 남고 싶어

동익건설 박성래 회장

동익건설(주)은 1978년 주택사업 면허를 취득한 1세대 주택건설업체로 지금까지 생존해 있는 보기 드문 장수기업이다.
44년째 동익건설을 이끈 창업주 박성래 회장(80)은 장수 비결로 ‘안전과 원칙 우선 경영’을 꼽았다.
박 회장은 21년째 국가유공자의 노후주택 보수사업에 꾸준히 참여하며 모범을 보이고 있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지켜낸 과거가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박 회장 역시 미래세대에 도움이 되는 기업가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한다.

진행구선영      사진김도형

인수봉 암벽등반 중인 박성래 회장
암벽등반으로 경영능력 다져온 80세 노장

“암벽등반을 40년 가까이 했습니다. 칠십이 넘어서도 주말이면 인왕산 암벽에 매달렸지요. 지금은 북한산성을 돌아 평창동으로 내려오는 코스를 즐겨 다닙니다.”
올해 팔순을 맞은 박성래 동익건설 회장의 꼿꼿한 자세와 다부진 풍채에서 건재함이 느껴진다. 건설현장 진두지휘가 잦은 건설회사 CEO에게 ‘체력은 곧 경영능력’이라고 여긴 박 회장이 젊어서부터 부단히 움직이고 운동해온 덕분이다.
박 회장이 창업한 동익건설은 1978년 4월 27일 서울시에서 주택건설 사업자등록을 취득한 후 44년간 명맥을 이어온 장수기업이다. 동익건설의 모태는 1974년 박 회장이 설립한 동익건축사 사무소다. 이듬해 서울 금호동에서 단독주택을 지으며 주택사업을 시작했다. 이어 서울, 고양, 김포, 일산, 수서, 별내 등 수도권 주택사업에 매진하며 그동안 7,000여 세대를 공급했다. 이 같은 실적을 인정받아 2007년 건설의 날에 건설교통부장관 표창을 받았으며 2009년 주택건설의 날에는 은탑산업훈장도 수상했다.
“‘서울시 주택사업면허 1호’라는 자긍심이 있지요. 당시 같이 면허를 취득한 사업자들은 거의 부도를 맞거나 자취를 감췄습니다.” 동익건설은 1978년 주택사업면허를 받은 수백개 회사 가운데 지금까지 살아남은 단 2개 회사 중 한 곳이다. 44년간 기업을 지켜온 경영 비결을 묻자, “등산처럼 안전과 원칙을 우선했다”는 답이 돌아온다. 외형 확대보다 내실에 집중한 덕분이라는 얘기다. 동익건설은 은행차입을 거의 하지 않는 기업으로 유명하다.
동익건설은 아파트 개발사업의 효시로도 평가받는다. 박 회장은 1985년 서울 도봉구 쌍문동 일대 다세대주택을 재개발하는 과정에서 고층아파트 건축을 추진했다. 토지 소유자들은 좋은 주택을 얻고 시공사는 분양물량을 받아 수익을 내는 구조다. 지금 보면 당연한 얘기 같지만 당시엔 ‘아이디어’였다.

  • 박 회장은 평소 건설 현장을 꼼꼼히 챙겨서 야전사령관이라고 불린다.
  • 2009년 은탑산업훈장을 받았다.
  • 박 회장은 우리 협회 서울시회장을 역임했다.
  • 동익건설이 국가유공자의 노후주택 보수를 진행한 현장
  • 2014년 실시한 서울시회 임원들의 해외연수
등반하듯 집 지어, 주택 대충 짓는 것 용납 못해

이후 박 회장은 집을 지을 때 기술과 경험을 녹여 내는 데 힘을 쏟아왔다. 그는 1985년 쌍문동 동익아파트에 동파이프를 배관으로 썼다. 동파이프는 녹이 슬지 않아 품질은 좋지만 값이 비싸서 업체들이 사용을 꺼렸다. 당시 동익건설은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다른 대형업체가 지은 아파트보다 시세가 높게 형성됐다.
“높은 시세의 요인은 ‘혈관’이에요. 집은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이 중요합니다. 콘크리트 속에 있는 배관이나 설비가 곧 혈관이지요.”
그 이후로도 코어선행공법, 영구배수공법, 영구 스트러트공법 등 신기술을 적용해 품질향상에 힘썼다. 입주 후에도 전문가들로 구성된 품질보증팀을 상주시키며 완벽한 하자보수 공사에 임했다.
“지난 44년간 사업을 확장할 기회도 많았지만, 분수에 맞게 사업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신중에 신중을 기했습니다. 그래야 수요자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안전하게 집을 공급할 수 있어요. 집은 내가 짓지만 완공되면 국민의 집이니까 늘 조심하는 것이죠.”
박 회장은 서민들의 재산목록 1호인 주택을 대충 지어 파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런 생각으로 야무지게 현장을 꼼꼼히 챙기는 바람에 ‘야전사령관’으로 불린다. 또 박 회장은 자사 브랜드의 시행과 시공만을 고집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동익건설의 아파트 브랜드 미라벨(Mirabell)은 오스트리아 찰츠부르크에 있는 17세기 궁전으로 정원이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하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촬영지로도 잘 알려졌다. 그만큼 명성있는 집을 짓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 박성래 회장은 21년째 국가유공자 노후주택을 고쳐주고 있다.
  • 국가유공자 함형엽 씨 아들인 함창균 씨의 방송 인터뷰 모습
  • 함창균 씨가 박성래 회장에게 보낸 감사 편지
21년째 국가유공자 노후주택 보수에 앞장 서

박 회장은 21년째 국가유공자 노후주택 보수사업에 참여 중이다. 무엇보다 공사지원 규모에 제한을 두지 않고 집의 뼈대는 물론, 문짝 하나까지도 제대로 고쳐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10살 때 본 6.25의 광경은 정말 참담했어요. 당시 희생된 참전 용사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나도 있고 우리나라도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동익건설은 2001년부터 21년간 한 해도 빠짐없이 보수사업에 참여해 21개동을 무료로 보수함으로써 생활이 어려운 국가유공자의 주거안정에 기여해왔다.
박 회장의 집무실에는 유수한 상장들과 어깨를 나란히 견주며 진열되어 있는 편지가 있다. 2013년 전상군경 함형엽 씨 소유의 노후주택을 보수하고 난 뒤 아들 함창균 씨로부터 받은 편지를 코팅해 둔 것이다. 함 씨는 무더운 날씨에 직접 집에 방문해 보수공사를 지휘한 박 회장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며 6.25전쟁 당시 파편이 가슴에 박힌 숙환으로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아버지를 대신해 인사를 전했다.
“해야 할 일을 한 것인데, 이렇게 고마움을 표현해 주니 큰 보람을 느낍니다. 무엇보다 그들이 국가유공자 유족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살아갈 수 있게 됐다는 말이 가장 마음에 남습니다. 현재를 사는 우리들은 과거세대의 노고를 잊지 않아야 하고, 동시에 미래세대에게 도움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박 회장은 수재민 및 불우이웃돕기에도 나서왔다. 수재의연금과 대구지하철참사 후원금 등 어려운 사정에 처한 이웃들을 돌아보는 일도 기업가의 몫이라고 생각해서다.

‘인내’로 걸어온 44년, 미래세대에게 도움되고파

박 회장에게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은 무엇일까. “직원들과 같이 일해온 것”이라고 주저 없이 답한다. 동익건설은 외환위기 이후 한 명의 직원도 인위적으로 줄인 일이 없다. 고용유지는 경영자의 의무라는 고집 때문이다.
“살아보니 인내 없이 이룰 수 있는 일은 없더군요. 어려울수록 인내해야만 지키고 싶은 것을 지킬 수 있어요. 최근들어 서울에 집 지을 땅이 줄어드니 그린벨트를 해제해서 아파트를 짓자고 하는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욕심입니다. 지금 내가 짓는 집이 미래세대에 유산이 된다는 생각으로 참아야합니다.”
“부끄럽지 않은 기업가가 되고 싶다”는 박 회장은 벌써 십수년 전부터 해외주택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코로나19로 인해 한동안 해외시장조사에 나서지 못했던 박 회장은 인도네시아행 일정을 검토 중이다.
인터뷰 끝 즈음 박 회장은 종이 위에 한자어로 칼도(刀) 자와 마음심(心) 자를 꾹꾹 눌러 썼다. ‘인(忍)’이라는 글자 위에 팔순 노장이 걸어온 길이 고스란히 그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