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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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격전지 속으로

산성 따라 걷는
호국보훈 여행

우리는 세계 최초로 산성을 만든 민족이다. 산성은 삼국시대이래 군사적 요충지로,
고려시대에는 몽골의 침입을 막아낸 현장이었고 일제강점기에는 항일운동의 거점이었다.
호국보훈의 달, 산성을 따라 떠나보자.

문유선 여행작가

  • 숲이 울창하여 여름에도 걷기 좋은 충남 공주의 공산성

우리 조상들은 산(山)에 의지해 나라를 지켰다. 전국 곳곳에 남아있는 산성의 흔적이 그것을 말해준다. 한국의 성은 외국의 그것과 개념이 조금 다르다. 유럽의 성은 도시 전체를 둘러싸는 개념이고, 일본의 성은 지배세력을 위한 공간이다. ‘만리장성’ 같은 중국의 성은 지역 전체를 커버하는 방어선 개념이다. 우리 조상들은 평소에는 비교적 낮게 성을 쌓은 거주지를 근거로 생활하다가 전란이 발발하면 군사와 백성들이 요새화된 산성으로 피신해 농성전을 펼쳤다. 호국보훈의 달, 산성을 따라가는 여행지로 떠나보자.
산성 여행은 예습이 필수다. 먼 옛날 현장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알고 가는 것과 아무 배경지식 없이 떠나는 것은 천지차이다. 우리나라의 산성은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등 시대적 상황에 따라 위치와 모습이 조금씩 다르다. 산성은 산에 있기 때문에 가벼운 산행을 대비한 옷과 신발을 챙겨야 한다. 성곽 위를 계속 걸어야 한다면 뜨거운 햇살을 막아줄 모자와 물을 반드시 챙겨야 한다. 성이나 탑처럼 돌을 쌓아 올린 구조물은 뱀이 서식하기 알맞은 환경이다. 바닥을 잘 보고 다니자.

울창한 숲길이 아름다운 충남 공주 공산성

충남 공주시 공산성은 백제의 두 번째 도읍지인 웅진성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공산의 산세를 그대로 살려 성벽을 쌓아 아름다운 곡선미가 돋보인다. 숲이 울창한 편이라 여름에 걷기도 좋다. 가장 유명한 건축물인 서쪽문 금서루 말고도 성 곳곳에 크고 작은 정자들이 남아있다. 2015년에는 백제역사유적지구라는 이름으로 인근의 다른 백제시대 유적들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공산성은 품고 있는 이야기가 많다. 한성에서 백제왕조가 쫓겨왔고, 의자왕과 태자의 피난처였다. 백제 부흥운동도 이 성을 중심으로 벌어졌다. 고려때는 거란의 침입을 피해 현종이 머물렀고, 조선의 인조는 이괄의 난때 공산성까지 쫓겨왔다. 당시 대접받은 떡이 ‘인절미’가 됐다는 야사도 전해진다. 갑오농민전쟁때는 농민군과 관군의 치열한 전투가 펼쳐지기도 했다.

산세에 맞춰 곡선으로 축조한 공주의 공산성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성 충북 보은 삼년산성

삼년산성은 신라 자비왕 13년(470년)에 돌로 쌓은 현존 한국 최고(最古)의 성으로 삼국사기에 ‘성을 쌓는 데 3년이 걸렸다’고 기록돼 있다. 전체 길이는 2.6㎞다. 높이 13~20m에 벽 두께 8~10m에 달하는 이 웅장한 성은 3,000명이 3년 동안 쌓았다고 알려져 있고, 축조 이후 한 차례도 함락되지 않은 불패의 요새다. 산성이 있는 오성산은 보은 일대 곡창지대를 내려다 보는 요충지다. 554년 삼년산성에서는 신라와 백제가 격돌했다. 승자는 신라였다.
트레킹을 즐기는 이들은 대부분 서문에서 출발해 남문, 동문, 북문을 거쳐 다시 서문으로 돌아오는 코스를 선호한다. 산성을 한 바퀴 도는 데 두 시간 내외 소요된다.

삼년산성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성이다.
길이 1만 8,845m의 웅장함 부산 금정산성

금정산성은 조선 숙종 29년(1703)에 건설된 국내 최대 규모의 산성이다. 길이 1만 8,845m, 성벽 높이 1.5~3m의 웅장함을 자랑한다. 일제강점기에 크게 망가진 산성을 1970년대에부터 순차적으로 복원했다.
동서남북으로 망루와 관문이 각 4개씩 있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갈 수도 있고, 도심지에서 산성까지 버스도 다닌다. 부산 지하철 1호선 온천장역 3번 출구로 나와서 203번 산성버스를 타면 된다(배차 간격 20분). 산행시에는 ‘동문’이나 ‘북문’에서 하차하고 식사를 위해서는 ‘중리’나 ‘죽전마을(종점)’에서 내리면 된다. 대한민국 민속주 1호로 지정된 금정산성 막걸리도 놓치지 말자. 북동쪽 기슭에는 대한민국 5대 사찰로 손꼽히는 유서 깊은 고찰 범어사가 있다. 범어사 근처에 등나무군생지가 있는데 천연기념물 제176호로 지정됐다.

성벽 높이가 최대 3미터에 이르는 금정산성
39년간 몽골침략에 대항한 강화도 강화산성

바다와 육지를 이어주는 관문 강화도는 오랜 세월 전란에 시달렸던 섬이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와 백제의 국경이기도 했고, 고려시대에는 몽골 침략을 피해 왕이 천도를 감행한 장소였다. 정묘호란때 왕이 피신한 곳도 이곳이다. 조선말, 대한제국 시대에는 서구열강의 침탈이 잦았다.
강화산성 탐방로는 고려궁지에서 시작한다. 서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강화산성 북문인 ‘진송루(鎭松樓)’와 이어진다. 강화산성은 강화읍을 에워싸고 있는 고려시대 산성이다. 몽골의 침입 이후 최우가 1232년 강화도로 수도를 옮기면서 성을 쌓았고 39년간 몽골의 침략에 대항했다. 흙으로 쌓은 성은 내성·중성·외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 남아있는 것은 길이 1.2km의 내성뿐이다. 처음에는 토성이었으나 1637년 병자호란 이후 파괴되고, 조선 숙종 때 전면 보수하면서 강화읍내를 한 바퀴 둘러 7.12km 규모로 확대됐다.

오늘날의 강화산성은 조선 숙종 때 보수한 것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된 세계적 명소 남한산성

남한산성은 201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세계적인 명소다. 1637년 1월 30일 조선 16대 임금 인조가 산성 서문(西門)을 나서 한강 동쪽 삼전도(현재 서울 송파구 삼전동 일대)로 간다. 청 태종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기 위해서다. 청나라 10만 대군의 공격을 피해 남한산성에서 농성한 지 47일 만의 일이다. 인조의 항복으로 병자호란(1636~1637)은 일단락된다. 이 역사는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남한산성은 통일신라 문무왕(672년) 때 쌓은 주장성의 옛터를 활용해 조선 인조 2년(1624)에 축성 공사를 시작하고 2년 뒤 완공했다. 성벽 둘레는 11.76㎞. 성벽 외부는 급경사인데 반해 내부는 경사가 완만하고 넓은 분지 형태다. 주민들이 머물거나 전쟁 등 유사시에 농성하기에 알맞은 구조다. 남한산성 탐방 코스는 모두 5개다. 거리도 4㎞부터 8㎞까지 다양하다. 소요 시간은 1시간 30분~3시간 20분 안팎이어서 누구나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다.

남한산성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명소다.
삼국시대부터 도성의 북쪽을 지키던 북한산성

북한산성은 삼국시대부터 격전지였다. 지금도 비봉 꼭대기에는 진흥왕 순수비가 남아있다. 고려시대에는 최영장군이 이곳에 주둔했다. 지금 우리가 보는 성은 조선 숙종때 쌓은 성이다. 현재의 북한산성은 조선 숙종 37년(1711)에 축성했고 둘레는 12.7km에 이른다. 북한산성에는 북문, 대동문, 보국문, 대성문, 대남문, 대서문 등 6개의 성문과 6개의 암문(暗門), 1개의 수문(水門), 군사 지휘 장소인 3개의 장대(將臺, 동장대, 남장대, 북장대)가 있다. 북한산에는 여러 탐방로가 있지만 성을 둘러보려면 북한산 초등학교에서 시작하는 것이 편하다. 임진왜란에서 교훈을 얻은 조선은 훈련도감, 어영청, 금위영으로 도성을 수비하고 유사시 피난처인 북한산성을 축성한다. 당시 왕실은 산성의 수비와 관리를 위해 11개 사찰을 설치하고 평창동 등지에 군량미를 배치했다. 고종때는 행궁에 사고를 설치해 왕실 서적과 역사서를 보관했다.

삼국시대부터 격전지였던 북한산성. 오랜 역사의 흔적을 간직한 곳이다.
  • 남한산성 탐방 코스는 전망이 탁월하다.
    사진= 한국관광공사, 서울관광재단,경기관광공사, 부산관광공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