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호

Quick menu

TOP

선비들이 사랑한 여름꽃, 배롱나무 명소

한옥과 고택, 서원 등에서 오랜 역사와 함께 터를 빛내 온 대표적인 조경수 배롱나무.
여름철 내내 붉은 꽃을 피우며 사랑받고 있는 배롱나무 명소들을 찾아간다.

전경우
여행작가

전북 정읍 서현사지에 꽃을 피운 배롱나무

배롱나무꽃(백일홍)은 한옥과 가장 잘 어울리는 여름꽃이다. 고택, 향교, 서원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유교 문화와도 관련이 깊다. 배롱나무는 수피(나무껍질)가 없다. 겉과 속이 같다는 이유로 역시 선비의 지조와 닮았다. 햇살처럼 강렬한 붉은색 계통의 꽃이고 여러 송이가 동시에 피어나는 특징이 있어 여름 풍경에 느낌표를 딱! 제대로 찍어준다. 배롱나무는 줄기를 만지면 나무가 간지럼을 타듯 흔들린다고 해서 ‘간지럼나무’ 혹은 ‘간질밥나무’라는 별명으로도 부른다.

중국 남부가 고향인 배롱나무는 꽃이 오래 핀다고 하여 백일홍나무라 하였고, 세월이 지나면서 배기롱나무로 변했다가 지금의 배롱나무가 됐다. 초화류인 백일홍과 구분되어 목백일홍으로도 불린다. 심은 사람이 죽으면 3년 동안 하얀 꽃이 핀다는 속설도 있다. 그래서인지 꽃말이 ‘떠나간 님을 그리워 함’이다. 배롱나무는 무궁화처럼 한 꽃이 100일 동안 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하루 피고 지고 하루 피고 지고를 반복한다.
배롱나무는 경상북도의 도화(道花)이며, 북구(대구광역시)의 구화(區花), 강릉시와 화성시의 시화(市花)이며, 남원시의 시목(市木)이다. 국내 최고령 배롱나무는 부산 양정동 배롱나무다. 1965년 4월에 천연기념물 제168호로 지정될 당시 추정 나이가 800살이었다.

담양 명옥헌과 죽림재

소셜미디어에서 배롱나무 명소로 가장 이름 높은 곳인 담양 명옥헌 원림(명승 58호)은 담양 소쇄원(명승 40호)과 함께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민간정원이다.
명옥헌의 역사는 조선 시대 선비 오희도에서 출발한다. 벼슬에 큰 관심이 없던 그는 ‘세속을 잊고 사는 집’이라는 뜻의 망재(忘齋)를 지었다. 오희도가 세상을 떠나고 아들 오이정이 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정자를 세우고 나무를 심었다. 여름이면 뭇사람을 설레게 하는 명옥헌 배롱나무의 시작이다.
명옥헌 원림에는 100그루 넘는 배롱나무가 있고, 수령 100년이 넘은 나무도 20여 그루가 자란다. 워낙 많은 인파가 몰리는 곳이라 평일 새벽에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비 오는 날 명옥헌의 운치도 놓칠 수 없는 볼거리다.담양의 배롱나무 명소로 죽림재도 빼놓을 수 없다. 죽림재는 창녕 조씨 문중의 글방으로 사용하기 위해 창건한 조선시대 사원으로 봄에는 벚꽃이, 여름에는 배롱나무가 만발한다.

담양 죽림재
담양 명옥헌의 배롱나무숲

안동 병산서원

호남에 명옥헌이 있다면 영남 배롱나무의 으뜸은 병산서원이다. 진입로부터 도열하듯 배롱나무가 식재돼 있고, 만대루 앞에도 커다란 배롱나무가 수문장처럼 우뚝 서 있다. 진짜 장관을 보여주는 나무는 입교당 뒤편, 존덕사 부근에 있는 노거수들이다. 용처럼 휘어져 하늘로 뻗어 나가는 가지의 기세가 남다르다. 이 나무들은 2008년 4월 7일 안동시 보호수로 지정됐다.
201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병산서원은 고려말부터 있던 풍악서당을 1575년(선조 8년) 병산으로 옮겼고, 그 모습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였고 많은 학자를 배출하였으며,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이 내렸을 때도 훼철되지 않고 존속한 47개 중 하나다.
인근에 있는 체화정도 배롱나무가 멋진 곳이다. 진사 이민적이 영조 37년(1761)에 건물을 세웠다. 형 옥봉 이민정과 함께 살면서 형제의 우의를 다졌다는 이 정자 주변으로 여름마다 배롱나무꽃이 흐드러지게 핀다. 체화란 형제의 화목과 우애를 뜻하는 말이다. 앞에는 3개의 인공섬이 있는 연못이 있어 정취를 더해준다.

안동 병산서원의 여름

정읍 서현사지

2백년도 넘게 살았을 십여 그루의 배롱나무가 있어 여름마다 사진작가들이 몰려드는 출사 포인트다. 이곳은 임진왜란 당시 선조의 피난 행렬을 따르다 26세의 나이로 순절한 박문효의 위패를 봉안한 서현사의 옛터다. 부인 송씨는 남편의 죽음을 전해 듣고 뒤를 따라 목숨을 끊는다. 1819년 순조는 이곳에 서현사를 세워 박문효와 부인의 뜻을 기렸는데, 고종 5년(1868년) 서원 철폐령에 따라 헐려서 지금은 원형을 찾아볼 수 없고, 후손이 세운 유허비와 부인 송씨의 정려문만 남아 있다.

정읍 서현사지

밀양 표충사

사찰에도 배롱나무를 많이 심는다. 무더운 여름은 수행도 공부도 게을러지기 마련인데 배롱나무가 쉬지 않고 꽃을 피워내는 모습을 보면서 열심히 정진하자는 뜻을 담고 있다.
경상남도 기념물 제17호인 표충사는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사명대사(四溟大師)의 충혼을 기리기 위해 국가에서 명명한 절이다. 1715년(숙종 41)에 중건한 사실이 있으나 1926년에 응진전(應眞殿)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화재로 소실된 것을 재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주요 문화재 및 건물로는 국보 제75호인 청동함은향완 (靑銅含銀香垸)을 비롯하여 보물 제467호의 삼층석탑이 있으며 석등(石燈)·표충서원(表忠書院)·대광전(大光殿) 등의 지방문화재와 25동의 건물, 사명대사의 유물 300여 점이 보존되어 있다.

밀양 표충사

고창 선운사

선운사는 동백이 가장 유명하지만 배롱나무꽃도 그에 못지않게 아름답다. 도솔산(兜率山)은 선운산(禪雲山)이라고 하는데 조선 후기 선운사가 번창할 무렵에는 89개의 암자와 189개에 이르는 요사(寮舍)가 산중 곳곳에 흩어져 있어 장엄한 불국토를 이루기도 했다. 김제의 금산사 (金山寺)와 함께 전라북도의 2대 본사로서 오랜 역사와 빼어난 자연경관, 소중한 불교문화재들을 지니고 있어 사시사철 참배와 관광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현재 선운사에는 보물 8점, 천연기념물 3점,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11점,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재자료 3점 등 총 25점이 있다.

고창 선운사

논산 명재고택

논산 명재고택은 1709년에 지어진 명재 윤증 선생 가문의 집으로, 전형적인 조선 중기의 양반 가옥이다. 안채, 사랑채와 누마루 등 전통 한옥의 형태가 남아있는 곳으로 한옥스테이도 운영 중이다. 명재고택 곳곳에는 배롱나무가 있어 멋과 분위기를 더한다. 고택 앞 연못가와 앞마당그리고 고택 옆의 노성향교 가는 길까지 배롱나무가 몇 그루씩 서 있어 여름이면 붉은 꽃을 피운다. 고택, 연못, 장독대, 향교의 문과 어우러져 다채로운 배롱나무 풍경을 만나볼 수 있다.

논산 명재고택

수원 효원공원 월화원

수원 도심에 있는 효원공원에는 이국적인 분위기로 꾸며진 월화원이 있다. 이곳은 경기도와 우호 교류 협약을 맺은 중국 광둥성이 2006년에 조성한 중국식 정원이다. 효원공원에서 월화원으로 향하는 길부터 여러 그루의 배롱나무를 마주하게 되는데, 7월 말부터 피기 시작해 8월이면 만개한 분홍빛 꽃을 볼 수 있다.

수원 효원공원 월화원

경주 종오정

종오정은 조선 영조때 자희옹 최치덕이 1747년에 지은 정자다.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로 좌우 양쪽에는 방이 있다. 팔작지붕 양쪽에 가적지붕을 달아 위에서 보면 지붕 평면이 ‘工’자 형태를 이룬 점이 특이하다. 둥근 기둥을 사용했고 기단과 주초는 신라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탑재를 주로 사용했다. 종오정은 글을 배우고 학문을 논한 곳답게 고요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풍긴다. 종오정 앞 연못에는 연꽃이 가득하고, 연못 옆으로는 배롱나무가 꽃을 피운다. 여러 그루의 배롱나무가 줄지어 서서 꽃이 더욱 풍성해 보인다.

여름철 만개하는 배롱나무꽃
경주 종오정
여름철 만개하는 배롱나무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