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호

Quick menu

TOP

  • HOME FUN LIFE fun한 여행

겨울바다 별미여행

겨울의 추위를 잊게 만드는 바닷속 제철 음식을 찾아 길을 나서보자.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겨울바다의 낭만도 즐기는 1석2조 여행이 될 것이다.

문유선
여행작가

울진 죽변항

“유럽에서는 석화 굴 하나에 만원 받던데…”
삼면이 바다인 한국은 해산물의 종류와 품질에서 축복받은 나라다. 땅의 수확은 가을에 이뤄지지만 바다는 겨울이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맛이 드는 해산물의 제철은 봄 산란기까지 이어진다. ‘포도가 잘 자라는 토양’을 뜻하는 ‘떼루아’가 바다에도 있다. 해저 지형과 조류의 흐름에 따라 같은 어종이라도 맛에 큰 차이를 보이는 이유다. 양식 해산물은 키우는 방법과 지역 바다의 특성에 따라 다른 맛이 난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겨울바다의 낭만도 즐길 수 있는 명품 여행지로 떠나보자.

  • 경북 울진 동해안 대게

    대게는 동해안 겨울 별미의 ‘원톱’이다. 동해 겨울 바다는 온갖 제철 생선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대게의 존재감에는 비할 것이 아니다.
    대게를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사람에게 그 맛을 설명하자면 ‘단짠단짠’하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대게는 별다른 요리법이 없다. 찜통이나 무쇠솥에 쪄먹는다. 속살의 맛이 워낙에 강렬하고 바닷물이 간을 해주니 대게찜은 그 자체로 ‘완전체’다.
    울진 후포항은 겨울마다 대게를 찾아오는 관광객으로 붐빈다. 포구 주변 여러 식당들이 대게를 취급한다. 후포항에 여장을 풀고 새벽 일출과 후포항 공판장 구경에 나서봐도 좋다. 수 많은 어선들이 바닥에 대게를 쏟아내고 가지런히 정렬해 경매인과 기싸움을 벌이는 모습이 장관이다.
    평해읍 거일리 도로변에는 ‘울진 대게 유래비’가 있다. 인접한 영덕 대게와 자존심 싸움이 극에 달하던 시절 세웠던 비석이다. ‘동국여지승람과 대동지지 등에 자해로 기록된 울진대게는 14세기 초엽인 고려 시대부터 울진의 특산물로 자리 잡아 왔다’고 쓰여 있다.
    망양정에서 후포항까지 연결되는 울진 해안도로는 옛 7번 국도 구간을 달리는 길이다. 셔터만 누르면 작품이 되는 포토 스팟이 즐비한 이 도로는 지도를 보면 짧아 보이지만 실제 길이는 무려 102km에 달한다. 코스 중간마다 촛대바위 등 명소들이 있고 작은 해안 마을의 아기자기한 매력을 느껴볼 수 있다.
    울진에는 유명한 온천이 두 개나 있어 겨울 여행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일제 강점기 개발을 시작한 백암온천은 무색무취한 53℃의 온천수로 나트륨, 불소 등 몸에 유익한 각종 성분을 함유해 만성피부염, 자궁내막염, 부인병, 중풍, 동맥경화 등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
    덕구온천은 울진의 북쪽 끝이다. 구멍을 뚫지 않고 자연적으로 용출되는 온천으로 무미·무색·무취의 철이온을 다량 함유한 철천(鐵泉)이다. 43℃의 온천수는 피부병·신경통 등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 울진 대게 유래비

    울진 대게 맛집

울진 덕구온천

강원도 속초 양미리와 도루묵

양미리와 도루묵은 속초 겨울 별미 양대산맥이자 원투펀치다. 도루묵은 겨울철 동해안 대표 어종으로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며, 알을 배고 있는 암도루묵은 얼큰한 찌개로, 숫도루묵은 조림이나 구이로 인기가 많다.
도루묵의 본래 이름은 ‘목어’다. 조선 선조가 피란길에 목(묵)어라는 생선을 먹어보고는 맛이 좋아 ‘은어’라는 이름을 하사했는데, 전쟁이 끝난 뒤 한양으로 돌아와 다시 맛본 은어 맛이 전과 다르자 밥상을 물리며 “은어 대신 도로 목(묵)이라 하라” 고 해서 도루묵이 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헛된 일이나 헛수고’ 를 뜻하는 ‘말짱 도루묵’이라는 말은 생선 이름에서 왔다. 도루묵은 주로 동해에서 잡혀 강원도에 있는 위판장에서 거래되는데, 전국 도루묵 위판량의 약 70%를 차지한다.
서해안의 까나리를 동해안에서는 ‘양미리’라 부르는데 칼슘과 철분, 단백질이 매우 풍부하다. 산란기인 초겨울에 그물로 잡아 구워 먹거나 꾸덕꾸덕하게 말려 간장에 조려 먹는다. 겨울 양미리철이 되면 동해안에서는 서울로 보낸 자식들을 고향으로 부른다고 할 정도로 은근하면서도 끌어당기는 맛이 일품이다. 이른 아침 양미리를 가득 잡아 올린 어선이 부두로 들어와 그물을 부려놓으면 부지런한 여행객은 일찌감치 간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양미리와 도루묵을 굽는다. 겨울 낭만이 익어가는 냄새에 취해 소주 한 잔 곁들이면 천국이 따로 없다.

  • 겨울철 별미 도루묵 구이

  • 속초 도루묵 시장

  • 양미리를 말리는 모습

전남 장흥 정남진 매생이, 키조개, 낙지, 한우

강원도 강릉에 ‘정동진’이 있다면 전라남도 장흥에는 ‘정남진’이 있다. 서울 광화문에서 정남 쪽에 위치한 지점이라 해서 ‘정남진’이다. 서울 사람들에게 ‘장흥에 간다’고 말하면 십중팔구 경기도 북부의 장흥을 생각한다. 전라남도 장흥은 순천에서 남해안을 따라 보성을 지나 강진 가기 전에 있는 곳이다. 서울에서 KTX를 타고 광주역에서 내려 1시간 30분 정도 차를 타고 더 가면 장흥이다. 승용차로 서울에서 출발하면 다섯 시간은 잡아야 한다.
장흥에는 먹거리가 풍성하다. 득량만 청정 바다에서 건져 올린 매생이, 키조개, 낙지 등은 물론이고 부드러운 육질을 자랑하는 한우의 생산지로도 유명하다.
홍어와 돼지고기, 묵은 김치를 함께 먹는 것이 삼합이다. 그런데 장흥에서 삼합을 시키면 전혀 다른 음식이 나온다. 한우와 키조개 관자를 표고버섯과 함께 구워먹는 것이 장흥식 삼합이다.
장흥은 전라남도에서 한우 산지로 명성을 날리던 곳이다. 장흥산 키조개는 예전에는 전량 수출되어 일반인은 구경도 못할 정도로 귀한 음식이었다. 표고버섯 역시 생산량과 품질 모두 장흥산의 이름이 높다. 이것을 불판이나 숯불에 구워서 한입에 집어넣으면 고단백질의 녹진한 맛이 향긋한 표고향과 함께 입안 가득 퍼진다.
삼합과 함께 장흥을 대표하는 겨울 먹거리로 매생이와 낙지가 있다. 매생이는 전국 제일의 생산량과 품질을 자랑하며 낙지 역시 득량만에서 잡힌 것을 알아준다. 넓은 갯벌이있어 꼬막, 바지락 등 온갖 조개류가 풍성하다.

  • 장흥 매생이 양식장

  • 장흥 삼합구이

충남 보령 서해안 양식굴과 간재미, 물잠뱅이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양식굴 생산지다. 굴이 최고급 식재료로 각광받는 유럽, 미주 지역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가격으로 싱싱한 굴을 실컷 먹을 수 있는 곳이 우리나라다.
굴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미식가들의 사랑을 받았다. 매주 1,200개의 굴을 까먹었다는 로마 세네카, 카이사르, 이집트 클레오파트라, 프랑스 앙리 4세, 베네치아 공국 카사노바, 미국의 문호 헤밍웨이,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등 이루 열거할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이들이 굴에 빠져 살았다.
충남 보령 일대는 겨울마다 굴을 맛보기 위한 여행객으로 북적인다. 가장 이름난 곳은 보령군 천북면 장은리에 있는 천북 굴단지다. 숯불에 올려놓고 굴이 입을 벌리기 시작할 때 속살을 발라먹는 굴 구이는 맛은 물론 하나하나 까먹는 재미까지 있다. 숯불에 구워 먹다 보면 굴 껍데기가 튀어 오를 수도 있어 주의해야 한다. 이것이 부담스럽다면 굴찜으로 먹는 것을 추천한다. 이 밖에 굴밥, 굴 칼국수, 굴전, 굴 회무침 등 다양한 요리로 맛볼 수 있다.
간재미 무침도 겨울 별미로 유명하다. 간재미는 개펄, 모래가 발달한 수심 50m 전후에서 많이 서식하는 가오리과 생선이다. 씹히는 맛이 좋으려면 연골이 물렁물렁해야 하는데 겨울에서 봄까지가 맛이 최고다. 여름이 되면 깊은 물 속으로 들어가 뼈도 억세진다. 오천항 주변에 잘하는 집이 많다.
물잠뱅이는 큰 입에 머리와 같은 크기로 길게 뻗은 몸통, 미끌미끌한 껍질, 흐물흐물한 살결 등 음식으로 먹을 수 없을 것 같은 물고기다. 표준어로는 꼼치, 지역에 따라 물메기, 물텀벙이로 불리는데 보령에서는 물잠뱅이라고 한다. 물잠뱅이는 날씨가 추워지는 겨울에 가장 맛있는 생선으로 알려져 있다. 다른 양념은 특별히 넣지 않고 신김치를 넣고 끓여야 담백하고 시원한 맛을 낼 수 있다. 살이 연해 숟가락으로 떠서 먹는 유일한 생선이다. 시원한 맛 때문에 해장국 요리에 이용되지만 추운 날씨에 건조시켜 찜을 하기도 한다. 12월에서 이듬해 3월까지가 가장 맛이 좋다.

  • 보령 천북 굴단지에서 맛본 굴구이

  • 충남 대천항의 겨울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