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의 숨결 느껴보는 건축여행 1
인천과 군산
늦가을 여행지로 근대의 숨결이 가득한 인천과 군산을 추천한다.
근대건축물에 담긴 오랜 이야기를 따라가며 서해안 항구도시의 멋을 느껴보자.
글문유선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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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제물포의 개항장거리. 근대건축물을 개조해 만든 공간이 즐비하다.
살아남은 것은 다 이유가 있다. 격동의 근현대를 거치며 무너지지 않고 살아남아 있는 건축물은 특별한 설명이 없어도 범상치 않은 에너지를 내뿜는다. 건축물은 시간이 머물렀던 그릇이다. 말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옛 건축물에 담겨있는 이야기들을 따라가다 보면 도시가 보이고 그 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숨결이 느껴지기 마련이다.
건축기행에는 여러 장르가 있겠지만 근현대로 범위를 좁혀보면 코스를 짜기 쉬워진다.
인천과 군산 같은 서해안 항구도시는 19세기 말~20세기 초중반까지 물자와 돈, 사람이 몰려드는 한반도의 관문 역할을 했다. 이후 교통의 변화로 쇠락했던 이들 지역은 최근 도시재생 프로젝트 등으로 다시 활기를 찾고 있는 곳이 많다. 오래된 노포 식당과 감각적인 카페들이 즐비하고 갤러리, 공연장 등 문화시설이 인접해 있는 경우가 많아 여행의 만족도가 높다.


근대 문물을 받아들이는 관문 인천 개항장
근대의 시작은 개항이었다. 1883년 개항 이후, 인천 제물포는 서양의 근대문물을 받아들이는 관문 역할을 수행했다.
개항장 일대는 근대건축물을 개조해 만든 다양한 박물관, 전시관, 이색 카페, 체험공간이 즐비하다. 붉은색과 금색이 조화를 이룬 중국 특유의 화려한 건축물과 짜장면으로 유명한 차이나타운도 볼거리다.
중구청 일대는 일제강점기의 흔적이 모여 있는 곳이다. 인천아트플랫폼은 총 8개의 근현대 건물로 이뤄진 복합문화예술공간이다. 1902년에 지어진 옛 조운업 건물, 1948년과 1933년 창고와 점포로 사용했던 건물, 1888년경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일본우선주식회사 건물 등으로 이뤄졌다. 다양한 분야의 전시가 이뤄지며, 북카페, 서점, 예술인 레지던스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대불호텔전시관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숙박시설로 알려진 대불호텔을 통해 우리나라와 인천 중구 숙박시설의 근대 역사를 두루 소개한다. 그 옆으로 인천개항박물관과 인천개항장근대건축전시관, 한국근대문학관 등 여러 박물관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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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개항기 건물을 리모델링한 인천아트플랫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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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호텔인 대불호텔을 소개하는 전시관
인천개항박물관은 일본 제1은행의 인천지점으로 1890년대에 지어졌다.
은행으로 사용할 당시의 창문과 금고, 기둥 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건축사적으로 많은 가치를 가진다.
개항 이후 인천항을 통해 들어온 근대문물과 관련 자료,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 경인선의 역사, 개항기 시절의 인천 거리풍경과 일본 은행과 관련된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다.
일본 제18은행의 인천지점으로 사용했던 건물은 인천개항장근대건축전시관으로 운영 중이다. 이곳에는 개항 이후의 인천항 자료, 개항기부터 현재까지의 근대건축물과 관련한 사진과 영상 등을 전시한다.
은행으로 사용될 당시의 금고와 지붕이 건물 안에 그대로 남아있다.
드라마 도깨비 촬영지인 제물포구락부도 둘러보자. 제물포구락부는 개항기 인천에 거주하던 수많은 외국인들의 아지트였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 주로 서양인들이 이곳에서 만나 함께 여가생활을 즐겼다. 당시에는 도서실, 당구대, 테니스 코트 등 친목 도모를 위한 시설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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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도깨비의 촬영지인 제물포구락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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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일본 제1은행지점은 인천개항박물관으로 탈바꿈했다.
인천역 앞 차이나타운도 옛정취가 남아 있는 곳이다. 차이나타운을 상징하는 패루는 마을 입구나 대로에 세우는 탑 모양의 중국식 전통대문이다. 인천 차이나타운에는 인천역 앞 첫 번째 패루인 중화가, 한중문화관 앞의 인화문, 자유공원의 선린문 등 총 3개의 패루가 있다.
인근에 짜장면박물관이 있다. 짜장면을 최초로 판매한 곳으로 알려진 공화춘은 1911년부터 70여 년간 운영하다 1983년 영업을 중단했다.
그 후 버려졌던 건물을 2012년부터 짜장면박물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박물관 안에는 화교와 짜장면의 역사를 소개하며, 당시 공화춘에서 수습된 유물을 활용해 1930년대의 식당 내부를 재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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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차이나타운의 패루(중국식 전통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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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장거리의 짜장면박물관
해상 교통의 요지 전북 군산 근대건축 투어
군산은 백제시대부터 해상 교통의 요지였다. 북으로 금강, 남으로 만경강 사이에 자리잡고, 서쪽으로 바다에 접한 반도형 지형이다. 고려, 조선시대에는 나라의 세곡을 보관하던 조창이 있었고 이것을 관할하던 군산진 관청이 있었던 번성한 항구였다. 1899년 개항 이후 군산은 계획도시로 변신한다. 일본식 도로 명칭인 본정통을 중심으로 전주통, 대화정, 욱정, 명치정의 주 간선도로와 본정통을 중심으로 동쪽으로부터 1조통에서 9조통까지 이어지는 격자형의 계획적인 가로망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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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근대역사박물관의 내부 관람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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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에 있던 건물을 복원한 근대생활관

군산에는 해방이후 ‘적산가옥’이라 이름 붙은 일본식 목조 가옥이 지금도 많이 남아있다. 장옥(나가야)은 일본식 건축물의 기본형태로 상가와 주택용도로 만들어졌으며, 한 건물에 2~6가구가 거주할 수 있는 연립가옥의 형태다. 정옥(마찌야)은 장옥과 유사한 공동주택 형태지만 중류층의 사택 또는 관사 등으로 쓰였던 더 큰 규모의 건물이다.

군산 건축투어는 소설 탁류와 아리랑이라는 스토리를 따라간다. 1937년 12월부터 1938년 5월에 걸쳐 조선일보에 연재되었던 탁류는 모함과 사기·살인 등 부조리로 얽힌 1930년대의 사회상을 풍자와 냉소로 엮은 채만식 선생의 대표작이다.
탁류 스토리를 따라가는 코스는 근대역사박물관에서 시작된다. 어수선하던 해망로 일대는 2011년 군산 근대역사박물관이 개관하면서부터 예쁜 거리로 바뀌기 시작했다. 군산의 근대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이곳의 인기공간은 1930년대 군산에 있던 건물을 복원한 근대생활관이다. 군산역, 영명학교, 야마구치 술 도매상, 형제 고무신방, 홍풍행 잡화점 등 당시 군산의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해 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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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미술관으로 바뀐 일본 제18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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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동 곡물창고는 장미갤러리로 바뀌었다.
근대역사문화관을 빠져나오면 옛 조선은행과 일본 제18은행을 만난다. 옛 조선은행은 <탁류>의 여주인공 초봉의 남편, 고태수가 근무하던 곳이다. 일본 제18은행은 나가사키에 본점이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에 대부업을 하며 인천과 군산 등에 지점을 차려 성업했다고 한다. 조선은행은 근대건축관으로, 구 일본 제18은행 군산지점 건물은 근대미술관으로 각각 재탄생해 여행객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바로 옆에 있는 장미동 곡물창고는 현재 장미갤러리로 바뀌어 예술작품을 전시 중이다.
이어지는 코스는 미두장기념비~째보선창~빈해원~동령고개~국도극장~콩나물고개~한참봉쌀가게소설비~정주사집소설비~동국사~이성당~제중당소설비~ 금호병원소설비~채만식문학관~임피묘소 순서로 연결된다.
대하소설 아리랑은 1990년 한국일보 연재를 시작으로 1995년 7월 12권까지 나왔던 작품으로 일제강점기 수탈한 곡물을 일본으로 보내던 군산이 주요 배경이다. 탐방객은 근대역사박물관~호남관세박물관~부잔교, 철길(군산항)~(구)조선은행(근대건축관)~(구)일본18은행(근대미술관)~미두장비~군산 3.1기념관~월명호수~월명공원 수시탑~해망굴~옥구저수지~열대자 마을(미성동)~문창초등학교를 잇는 코스를 따라간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영화 <타짜>와 <장군의 아들> 등의 촬영지로 유명한 신흥동 일본식 가옥도 가볼 만하다.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이 집은 목조 2층 주택으로 건립 당시 지붕과 외벽, 내부와 정원이 온전히 보존되어 있다. 군산의 대표적인 근대 시기 주택으로, 규모가 크며 일제강점기 일본인 지주가 살던 곳이다.
군산에는 일본풍 사찰도 있다. 동국사는 일본 승려에 의해 창건되어 일제강점기 일본 승려에 의해 운용되던 곳이다. 일본불교의 황국 신민화 교육행위를 참회하는 참사문비와 군산 평화 소녀상이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