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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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붉은 말의 해
새해맞이 희망의 여행지

새해를 맞아 부지런함의 특권인 장엄한 일출이나 여유 속에서 더 깊은 만족을 주는 낙조를 마주해 보는 건 어떨까.
삶의 속도와 취향에 맞는 새해 첫 여행을 권한다.

전경우 여행작가

인천 정서진 낙조와 갯벌 사진_한국관광공사, 각 지자체 제공

2026년 병오년(丙午年) 새해가 밝았다. 지난 한 해의 무거운 짐과 아쉬움을 낡은 허물처럼 뒤로하고, 이제 새로운 길을 걷는 시간. 동해의 첫 빛이 낡은 외투를 비추고 서해의 낙조가 지나온 시간들을 갈무리할 때, 저마다 ‘희망’을 노래해 본다. 붉은 말(馬)의 해, 우리 모두 전설의 적토마처럼 내달릴 수 있기를 바란다.
잔뜩 힘줘서 멋있게 말해보려 했지만, 결국 간단히 말해 ‘태양’을 보러 가는 여행이다. 목적지를 고를때 ‘일출파’와 ‘낙조파’가 갈리게 되는데, 각자의 평소 기상 시간, 체력, 취향, 스타일을 고려해 목적지를 정하면 된다. 객기 부리면 몸만 힘들다. 장엄한 일출은 부지런한 사람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차가운 공기를 가르고 도착한 그곳에서 마주할 풍경은 당신에게 어떤 대답을 건넬까.
낙조 여행은 일출보다 임팩트는 약하지만 만족도는 훨씬 높다. 잠을 설치거나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되고 장엄한 시간도 조금 더 긴 편이다. 지는 해는 끝이 아니라 내일 더 찬란하게 떠오르기 위한 쉼표다.
아침형 인간인 ‘일출파’와 느긋한 여유를 원하는 ‘낙조파’에게 어울리는 새해 첫 여행지를 추천해 본다.

클래식한 여행지-검증된 명당

뻔한 곳이지만 여전히 사람이 많은 곳. 다 이유가 있다. 클래식한 명소들은 우리를 배신하지 않는다. 인파가 몰려 불편할 수 있지만 그만큼 주차장, 화장실, 산책로 등 인프라가 충실하게 갖춰져 있다.

일출

오랜 시간 사랑받아온 동해안의 명소들은 압도적인 개방감과 장엄한 스케일로 새해의 결심을 더욱 단단하게 만든다. 거대한 바다의 에너지가 햇살을 머금고 폭발하는 느낌. 어둠을 뚫고 솟는 선명한 생명의 선언이다.
강릉 정동진은 대한민국 일출의 영원한 클래식이다. 소나무와 철길 너머로 솟는 태양은 세대를 초월한 감동을 준다. 인접한 강릉 경포해변 역시 끝없이 펼쳐진 백사장과 광활한 수평선이 맞닿은 곳. 탁 트인 시야 덕분에 태양이 수면 위로 치솟는 순간의 역동성을 가장 순수하게 느낄 수 있으며, 인근 경포호의 고즈넉함까지 덤으로 누릴 수 있다.
포항 호미곶에는 ‘호미’ 대신 ‘상생의 손’이 있다(호미(虎尾)는 호랑이 꼬리다). 거대한 손바닥이 태양을 받쳐 든 형상은 우주의 기운을 손에 쥐는 듯한 벅찬 기운을 선사한다. 간절한 희망이 있다면 울산 간절곶에 가보자. 육지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곳. 커다란 소망 우체통 옆에서 남들보다 한발 앞서 새해의 빛을 맞이한다는 상징성이 크다.
양양 낙산사 의상대는 해안 절벽 위 정자와 낙락장송이 주인공이다. 푸른 동해와 붉은 태양, 고즈넉한 정자가 만드는 구도는 그 자체로 완벽한 예술 작품이다.
조금 조용한 곳을 찾는다면 고성 천학정도 비슷한 풍경을 마주할 수 있다. 천 년 넘은 송림 사이로 솟구치는 태양은 ‘하늘의 이치를 배운다’는 정자의 이름처럼 경건한 감동을 준다.
여수 향일암은 남해안 일출의 자부심. ‘해를 향한 암자’라는 이름처럼, 절벽 사이로 솟구치는 태양은 비장미의 극치를 보여준다.

강릉 경포해변 일출
정동진 일출
호미곶 상생의 손과 일출
양양 낙상사 의상대 일출

낙조

오랜 시간 사랑 받아온 낙조 명소들은 다 이유가 있다.
태안 안면도 꽃지해수욕장은 대한민국 낙조의 상징과도 같다. 할미·할아비바위 사이로 떨어지는 태양은 장엄하다 못해 경건하다. 썰물 때면 바위까지 걸어갈 수 있어 산책과 감상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서산의 간월암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만조 시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은 절, 그 위로 떨어지는 낙조는 한 폭의 동양화다. 가족과 함께라면 부안 변산해수욕장이 좋다. 고운 모래사장과 채석강이 이어지는 코스로 서해의 낭만을 가장 클래식하게 즐길 수 있다.
남해안으로 시선을 돌리면 부산 다대포해수욕장이 기다린다. 갯벌에 비치는 반영은 ‘한국의 우유니 사막’이라 불릴 만하다.
국가대표급 낙조 명당 순천만 습지는 자연이 빚은 최고의 걸작이다. 용산전망대에서 보는 S자 물길과 황금빛 갈대밭, 철새들의 군무가 어우러진 풍경은 언제 봐도 감동이다.

변산해수욕장 낙조
부산 다대포해수욕장의 일몰

일상 속에서 건져 올린 희망 -수도권의 명소들

멀리 떠날 여유가 없어도 좋다. 익숙한 도심의 풍경이 태양을 만나 특별한 서사시로 변모하는 순간도 충분히 아름답게 느껴진다.

일출

서울 아차산은 서울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곳이다. 완만한 산책로를 따라 정상에 오르면 한강 줄기를 따라 붉게 번지는 여명과 대도시의 스카이라인이 어우러진 장관을 만날 수 있다.
서대문구 안산은 서울 일출의 숨은 보석이다. 봉수대에 서면 인왕산과 북한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고, 그 사이로 해가 솟을 때 성곽과 산세가 붉게 물드는 풍경은 압도적이다. 데크길이 잘 정비되어 새벽 산행도 부담 없다.

북한산 정상에서 본 일출
서울 서대문구 안산에서 본 일출

낙조

지하철이나 가벼운 드라이브로 만나는 서해는 기대보다 몇 배 이상 짙은 여운을 준다.
인천 정서진은 광화문의 정서쪽이라는 상징성만으로도 연말 방문 가치가 충분하다. 랜드마크인 조약돌 모양 ‘노을종’ 중앙에 붉은 해가 걸리는 순간은 그야말로 예술이다. 노을종 옆으로 퍼지는 붉은 빛이 한 해의 아쉬움을 종소리처럼 은은하게 퍼뜨린다.
안산 탄도항은 이국적인 풍경을 원한다면 제격이다. 거대한 풍력발전기 3기가 거인처럼 서서 해를 맞이한다. 하루 두 번 열리는 ‘탄도바닷길’이 포인트인데, 물 빠진 갯벌 위로 쏟아지는 황금빛 노을은 영화 속 한 장면을 걷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지하철 4호선의 종착역 시흥 오이도는 낮보다 밤이 아름답다. 빨간 등대와 함께 떠오르는 야경 명소 ‘생명의 나무 전망대’가 핵심이다. 일몰 직후 매직아워에 조명이 켜지면 몽환적인 분위기가 절정에 달한다.
조용한 사색을 원한다면 화성 궁평항이나 강화도로 가보자. 궁평항은 100년 넘은 해송 숲과 피싱 피어(낚시용 잔교) 끝에서 온몸으로 받는 해넘이가 일품이다. 강화도 남서쪽 끝자락에 있는 장화리는 화려한 인공시설이 없다. 광활한 갯벌을 붉게 태우는 태양이 오롯이 자연에 집중하게 만든다.
수도권 1~2시간 거리 이동마저 부담스럽다면, 아예 서울 도심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마포구 하늘공원은 이름 그대로 서울의 하늘과 가장 가까이맞닿은 곳이다. 끝없이 펼쳐진 은빛 억새밭이 붉은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시간은 가을과 겨울의 경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찬란한 풍경이다. 전망대에 서면 성산대교와 여의도 스카이라인을 배경으로 붉은 해가 내려앉는데, 그 광활함은 잠시나마 이곳이 도심임을 잊게 만든다.
혜화문에서 동대문으로 이어지는 한양도성 성곽길은 서울에서 가장 서정적인 산책로라 할 수 있다. 해 질 녘 성곽 너머로 펼쳐지는 파노라마 뷰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K팝 데몬 헌터스’에 나온 이후 외국인 여행자들에게 필수 코스가 됐다.
한강 노들섬은 최근 MZ세대 사이에서 최고의 일몰 데이트 코스로 통한다. 탁 트인 잔디마당이나 서쪽 스탠드에 앉아 63빌딩 너머로 사라지는 태양을 바라보는 맛이 각별하다. 강물 위로 붉은 윤슬이 반짝이고, 때마침 철교 위를 달리는 열차의 실루엣이 더해지면 서울이라는 도시가 가진 가장 감성적인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안산 탄도항 낙조
오이도 생명의 나무 전망대
화성 궁평항의 일몰
강화도 장화리 일몰 조망지
상암동 하늘공원의 일몰 풍경

뷰파인더에 담긴 신비로운 찰나 - 개성 넘치는 명소

평범한 풍경을 거부한다면, 독특한 피사체와 어우러져 ‘인생샷’을 남길 수 있는 특별한 장소로 향해보자.

일출

창녕 우포늪은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늪의 아침은 몽환적이다. 차가운 새벽 공기 속에 피어오르는 물안개를 뚫고 고기잡이 배가 지나갈 때 붉은 해가 떠오르면,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다.
고성 공현진항(옵바위)은 거대한 바위 사이 좁은 틈으로 해가 쏙 들어오는 찰나를 포착할 수 있어 사진작가들에게 성지로 불리는 곳이다.

창녕 우포늪 일출
고성 공현진해수욕장 일출

낙조

태안 운여해변은 사진작가들 사이에서 입소문 난 비경이다. 방파제를 따라 심어진 소나무 숲의 반영이 마치 데칼코마니 같다. 검은 소나무 실루엣과 붉은 하늘, 이를 담아낸 수면이 만나는 신비로움은 만조 때 제대로 볼 수 있다.
바다가 아닌 내륙도 특별하다. 완주 비비정예술열차는 출발 시간을 확인할 필요가 없다. 만경강 철교 위 멈춰 서있는 낡은 기차를 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킨 곳이다. 기차 내부 카페 창가에 앉아 유유히 흐르는 강을 붉게 물들이는 노을을 바라보면 아련한 레트로 감성이 차오른다.
전북 부안의 숨은 명소, 노을바라기전망대도 놓칠 수 없다. 변산반도 해안 도로를 달리다 만나는 이곳은 이름 그대로 노을을 보기에 가장 시야가 탁 트였다.

완주 비비정예술열차와 일몰
태안 운여해변 낙조
부안 노을바라기전망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