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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듈러,
건설업을
제조업으로
만드는
스마트건설기술

건설산업의 생산성 향상은 오래된 과제다. 이의 해결방안 중 하나가 바로 모듈러 건설이다. 미국에서는 29층짜리 모듈러 호텔이 등장할 정도로 각광받는 기술인데 비해 국내시장은 아직 걸음마 단계에 있다.

손태홍
공학박사·한국건설산업연구원 미래기술전략연구실장

1850년 런던박람회장에 첫 적용한 ‘모듈러’

건설산업을 바꿀 스마트 건설기술을 소개하는 첫 번째 시간이다.
필자는 지난호 원고에서 건설산업이 대표적인 고비용·저효율 산업으로 평가받는 근본적인 이유는 낮은 생산성에 있음을 지적했다. 그런데 낮은 생산성의 원인 중에 옥외현장 기반으로 노동력 의존도가 매우 높은 건설산업의 태생적 특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옥외현장에서 시설물의 생산이 이뤄지다 보니 기후 등 외부환경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고, 인력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일정 수준의 생산성을 유지하기도 어려울뿐더러 관련 안전사고는 빈번히 발생한다. 이러다 보니 낮은 생산성은 건설산업의 해묵은 과제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이 해묵은 건설산업의 과제를 해결할 방안 중의 하나로 최근 모듈러 건설이 주목받고 있다.
사실 모듈러는 최근 4차 산업혁명의 등장과 함께 새롭게 나타난 건설방식이 아니다. 1850년 런던 박람회 전시장 건설에 사용되었고, 1·2차 세계 대전 이후 주택수요 급증에 대응하기 위한 주요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미국, 영국, 일본 등에서 모듈러 방식은 우리나라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익숙한 기술이지만, 국내에서는 이제야 소규모 공공사업을 중심으로 모듈러 방식의 적용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아직 기술의 성숙도는 낮고 관련 발주방식 등 제도 정비도 시작단계에 있어 향후 시장 확대를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듈러 건설이 주목받는 이유는 산업의 생산방식을 건설(Construction)에서 제조(Manufacturing)로 전환함으로써 생산성을 높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품질향상 및 안전사고 예방 등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 건설기술, 모듈러에 대해 좀 더 상세히 알아보자.

모듈러 건설과 사전제작의 차이점

모듈러 건설은 구조물의 규격화된 구성물을 최종 시설물 현장이 아닌 오프사이트(Off-Site)의 제조시설에서 생산하고 현장으로 운반하여 조립하는 방식이다.
모듈러 건설과 유사한 개념으로 사전제작(Prefabrication)과 오프사이트 건설(Off-Site Construction, 이하 OSC)이 있지만, 이 둘은 범위 측면에서 구별된다.
OSC는 개별 공법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건설사업의 계획, 설계, 제작 및 조립 등이 최종 시설물이 건설되는 현장이 아닌 다른 위치에서 수행되는 방식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반면, 사전제작은 모듈러 건설과 유사하지만 사전제작의 형태가 반드시 규격화된 모듈로만 국한되지 않고 미리 제작이 가능한 시설물의 구성 요소를 모두 포함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모듈러 건설방식의 진행 과정

모듈러 건설은 아래의 그림에서 보듯이 현장 시공(Site-Built)과 달리 설계 및 엔지니어링 단계 이후 현장 부지 및 기초공사와 모듈 사전제작이 동시에 이뤄짐에 따라 시설물의 시공기간을 절감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사전제작을 통한 공기단축이라는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사업의 기획단계에서부터 시공단계의 공정관리까지 면밀한 계획의 수립과 수행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먼저 모듈러 적용 대상의 구성요소 결정, 모듈 생산과 수송 등의 가능 여부, 모듈 품질관리 방안 등을 고려해 사업을 면밀히 기획해야 한다. 이후에는 모듈 생산과 조달 가능 여부, 모듈 설치와 현장 시공 간의 시공성을 반영한 설계 및 엔지니어링이 이뤄져야 한다.
또한 모듈 특성에 따른 장비 활용계획, 모듈 운송계획 등이 반영된 시공관리계획도 수립 및 수행되어야 한다.
이처럼 모듈러 방식을 활용한 건설사업의 수행은 기존 현장시공방식과 비교해 종합적인 사업 기획과 설계 및 엔지니어링 및 시공관리 역량의 보유가 필수적이다.

현장시공방식 vs 모듈러건설방식 사업기획 설계/엔지니어링 부지개발/기초공사 시설물 시공 현장설치/시공 모듈 사전제작 공기 단축 유지관리/해체 유지관리/해체/재활용 1.모듈러 활용계획 수립 및 발주계획 검토 2.모듈생산 및 시공성을 고려한 설계·ENG 3.모듈을 고려한 공정계획의 수립·관리
<그림 1> 현장시공 vs 모듈러 건설방식 비교
출처 : 박희대(2019) 모듈러 건설과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 스마트 건설 생태계 구축을 위한 혁신전략 모색 세미나
29층 Apex House 12개월만에 건설

모듈러 건설의 최대 장점은 공기단축이다. 이러한 장점은 추가 공사비의 투입 보다 시설물의 조기준공에 따른 운영수익이 큰 호텔, 기숙사, 병원, 사무실 등과 같은 상업시설 영역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미 미국과 유럽에서는 다수의 초고층 업무시설과 숙박시설 및 의료시설이 모듈러 방식으로 건설되었다.
대표적인 예로, 런던의 웸블리에 소재한 29층 높이의 숙박시설인 Apex House는 679개의 개별 모듈로 구성된 580개 객실을 보유하고 있는데, 총공사 기간이 12개월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모듈 건축물로 알려져 있다(그림 2).
이외에도 케냐와 나이지리아에 건설된 225개 객실 규모의 Upper Hill 호텔, 130개 객실의 Legend 호텔 등이 모듈러 방식으로 건설되었다.

<그림 2> 모듈러 방식의 Apex House 시공 과정(좌)과 준공 모습(우)
국내 모듈러 사업 총 84건에 머물러

국내에서는 2003년 서울 신기초등학교 증축공사에 모듈러 방식이 처음 적용된 이후 2019년까지 모듈러 방식의 사업은 총 84건으로 연평균 5건에 그치고 있다.
건축 연면적으로는 총 45만321m2로 같은 기간 국내 전체 건축 연면적의 0.02%를 차지해 시장 규모를 측정하는 자체가 무의미한 수준이다. 또한 국내에서 추진된 모듈러 건설사업의 70%가 공공기관에서 발주한 사업으로 공공 의존도가 높다.
이와 같은 시장의 낮은 성장성과 더불어 모듈러 관련 기술의 부족으로 인해 모듈러 건설의 장점이 극대화될 수 있는 초고층 숙박 및 업무시설 사업은 전무한 실정이다.
<그림 3>은 국가 R&D 사업의 하나로 추진된 서울 가양동과 천안 두정동에 모듈러 방식으로 건설된 각각 30세대와 40세대 규모의 공동주택이다.
해외사례와 비교해 국내 건설시장에서 모듈러 방식의 사업이 제한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는 원인은 국내에 관련 기업이 매우 적고, 모듈제작 및 조립기술의 수준도 초기단계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기술을 요구하는 시장의 부족이 관련 산업의 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의미다. 때문에 모듈러 건설의 활성화는 일정 규모의 이상의 시장 확보는 물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 정비, 제작 및 기술의 고도화 등이 동시에 추진되어야 가능하다.

<그림 3> 서울 가양동(좌)과 천안 두정동(우)에 건설된 모듈러 방식의 도시형 생활주택
다양한 모듈러 비즈니스 모델 구축해야

국내 주택시장에서 모듈러 건설방식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관련 시장과 제도 정비는 물론이거니와 최종사용자가 갖는 모듈러 주택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바꾸는 것도 중요하다.
또한 관련 기업은 시장 진출형태를 다양한 시각에서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모듈러 건설시장은 모듈러 제작 기업을 포함해 종합건설기업, 설계 및 엔지니어링 기업 등 모든 주체가 접근 가능한 시장이다. 따라서 모듈러 건설사업을 위한 역량 확보와 함께 다양한 형태의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부는 모듈러 공법이 건설산업의 생산 개념을 전환할 수 있는 중요한 기술로 정착될 수 있도록 기술개발 지원과 함께 기업 유인을 위한 시장 창출에 힘을 쏟아야 한다.
주택 등 일부 상품 영역에서만 활용되는 기술이 아닌 건설산업의 상용 기술로써 모듈러 기술이 정착될 수 있도록 지원정책도 마련해야 한다. 모듈러에 관한 높아진 세간의 관심이 짚불이 아니라 군불이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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