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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야행
밤이 아름다운
여행지
여름은 밤을 즐기기에 최적인 계절이다.세상의 번잡함이 가려지는 달과 별의 시간, 로맨틱한 정취를 즐길 수 있는 밤 나들이를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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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문유선
여행작가
여름밤을 즐길 수 있는 여행법은 끝없이 많다. 거대 도시의 화려한 야경과 마주하는 여행이 가장 기본이다. 최근 야행(夜行)을 즐기는 이들이 늘면서 각 지자체들은 야간 경관조명 설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주요 도시의 메인 관광지는 대부분 밤 산책이 가능하다.
시간여행을 떠날 수 있는 유적지의 밤도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 준다. 서울 고궁처럼 봄~가을 시즌마다 한시적 개방을 하는 곳들은 예약 전쟁이 벌어질 정도로 인기가 높다.
별을 보고 싶다면 깊은 산중에 자리잡은 천문대를 찾아가는 여행을 추천한다. 칠흑 같은 밤, 쏟아지는 별빛을 바라보는 시간은 도시에서는 절대 경험하기 어려운 감동을 준다.
은하수 감상은 시간대를 잘 공략해야 한다. 일단 일기예보를 체크하고 맑은 날을 골라서 가는 것이 첫 번째다. 6월은 오후 10~11시, 7월은 오후 8~9시, 8월은 해가 지면 남동쪽 하늘에서 신비로운 은하수를 감상할 수 있는데 보름달이 뜨는 시기는 피해야 한다.
남들과 여행을 추구하는 힙스터라면 섬진강 달마중이나 제주 곶자왈 반딧불이축제 등 독특한 야간 투어 프로그램에 도전해 보자.
편안한 밤 여행을 원한다면 철저한 준비가 필수다. 일교차가 큰 산악지역에서는 체온을 유지시켜 줄 수 있는 긴팔 옷을 챙겨가는 것이 좋다. 모기밥이 되지 않으려면 뿌리거나 바르는 타입의 해충기피제를 사용하자. 지면이 고르지 못한 곳을 방문한다면 손전등, 헤드랜턴 등도 미리 챙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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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운대리버크루즈에 탑승하면 해운대와 수영만의 야경을 즐길 수 있다. 사진 비짓 제주 제공
빛의 오케스트라 통영 디피랑
통영은 밤 9시가 넘으면 음주 이외에 할 것이 없는 여행지였다. 그런데, 지난해 10월 남망산 공원에 야간형 디지털 테마파크 ‘디피랑’이 들어서며 밤에도 북적이는 여행지가 됐다. 홀로그램, 프로젝션 맵핑, 일루미네이션 조명 등 첨단 기술로 구현한 실감 콘텐츠의 매력에 벌써 1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이곳을 찾았다.
디피랑은 국내 최대 규모 디지털 테마파크다. 1.3km의 산책로가 조성된 공원 전체가 새로운 빛의 공간으로 탈바꿈해 압도적인 몰입감을 선사한다. 디피랑에는 숲속 출구, 디피랑산장, 신비폭포, 비밀공방, 메아리마을, 빛의 오케스트라 등 15개의 공간이 기승전결에 맞춰 조성됐다.
디피랑의 캐릭터는 통영의 나무로 잘 알려진 동백나무의 열매를 형상화한 ‘동백이’, 남망산을 변형한 ‘피랑이’다. 또한, 디피랑은 통영을 대표하는 예술가인 전혁림 화백과 김종량 자개장인의 작품들을 재해석했다.
우주의 신비를 만나다 증평 좌구산천문대
먼 옛날부터 인류는 밤하늘의 별을 보며 우주의 신비를 꿈꿨다. 좌구산천문대는 증평과 청주 일대 최고봉인 좌구산(657m)에 있다. 주변에 도시의 불빛이 없어 검은 벨벳같이 어두운 밤하늘이 펼쳐진다. 국내에서 가장 큰 356mm 굴절망원경이 설치되어 작은 망원경으로 볼 수 없는 다양한 천체의 모습을 관찰하기 좋다. 여름철에는 토성과 목성 등을 찾아볼 수 있다.
최신 시설을 갖춘 좌구산자연휴양림이 가까이 있어 밤 늦게까지 별을 봐도 숙박이 가능해 서둘러 집에 갈 필요가 없다. 휴양림 입구에는 ‘좌구산 명상구름다리’ 가 허공에 걸려있다. 길이가 무려 230m로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입이 쩍 벌어진다. 다리 건너편에는 아담하고 예쁜 자작나무 숲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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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시간 노출로 촬영한 좌구산천문대 건물과 별자리. 사진 좌구산천문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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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구산천문대 내부에는 증강현실을 체험할 수 있는 시설이 있다. 사진 좌구산천문대 제공
도시 야경의 진수 부산 해운대
초고층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도시 야경은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이 있다. 마치 밤 비행기가 착륙할 때 느꼈던 것과 비슷한 감흥이다.
서울 이남에서 가장 높은 고층 전망대는 부산에 있다. ‘부산 엑스더스카이 BUSAN X the SKY’는 국내 두 번째 높이(411.6m)인 ‘해운대 엘시티 랜드마크타워’ 꼭대기에 있다. 전망대에 오르면 활처럼 휘어진 해운대 백사장 너머 부산의 랜드마크 광안대교와 마린시티의 불빛, 부산 구도심 지역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해운대와 반대편에서 바라보는 부산 야경이 궁금하다면 황령산 전망대가 답이다. 전망대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은 일몰 직후다.
미포방파제, 봉대산(간비오산), 봉오리산, 봉래산, 동향성당, 승학산 등에도 부산 지역 사진작가들이 즐겨 찾는 야경 촬영 명당이 있다. 부산 영도 지역은 아기자기한 카페와 밤 풍경을 함께 즐길 수 있는 명소다. 해운대 리버크루즈를 이용하면 홍콩과 비슷한 느낌으로 부산 밤여행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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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해운대 마린시티의 화려한 야경이 환상적이다.
조선시대 선비의 별구경 영천 소수서원
날아갈 듯 하늘로 치솟은 처마 너머로 별이 쏟아져 내린다. 절대적인 적요의 순간, 평생 기억에 남을 여름밤 정취다. 관광객에게 낮의 시간만을 허용하던 서원이 최근 야간 투어를 시도하고 있다.
영주 소수서원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소수서원의 밤은 경주, 부여 등 여타 문화재와 함께 하는 야간 투어와 격이 다르다. 건물을 비추는 경관조명이 없다. 칠흑 같은 밤, 달빛에 비친 고건물은 인공조명이 만들어 낼 수 없는 아우라를 뿜어낸다. 영주 시내와 멀리 떨어져 있어 처마 너머 별을 관찰하기도 알맞다. 영주를 대표하는 여행지인 부석사에서 늦은 오후부터 시간을 보내고 소수서원으로 이동하면 편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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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서원은 경관조명이 없어 별이 쏟아지는 하늘이 뚜렷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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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낙조 무렵이 가장 아름답다. 사진 승우여행사 제공
제주 서귀포 반딧불이 체험 청수 곶자왈
곶자왈의 깊은 곳, 어둠에 익숙해질 무렵 반딧불이가 코스 주변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주변에 탐방객이 여럿 있지만, 숲속에 혼자 있는 느낌이다. 누구 하나 숨소리도 내지 않고 반딧불이를 지켜본다. ‘절대 고요’가 찾아온 순간, 수없이 많은 반딧불이가 날아올라 곶자왈을 환하게 밝힌다.
반딧불이의 신비로운 군무를 마주할 수 있는 야간 곶자왈 산책은 평생 기억에 남을 강렬한 경험이다. 제주 반딧불 체험은 지난 2014년 난대림연구소에서 곶자왈 야간 곤충 실태조사 당시 반딧불이 집단 서식지가 알려져 탐방객이 몰려들며 시작됐다.
제주에서 반딧불을 관찰할 수 있는 대표적인 곳은 청수리 곶자왈이다. 청정한 숲속 깊은 곳에 운문산반딧불이, 늦반딧불이 2종이 살고 있는데 7월까지 볼 수 있는 것은 운문산반딧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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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수리 곶자왈 반딧불이의 군무가 신비롭다.
은빛 모래사장을 걷다 섬진강 달마중
매월 음력 보름 무렵 주말에 진행되는 ‘섬진강 달마중’ 프로그램은 보름달 밤이면 마을 주민들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횃불을 들고 강변 백사장으로 나와 놀았던 풍습에서 착안했다.
프로그램의 무대는 소설 ‘토지’의 배경으로 유명한 악양면 평사리공원 앞 섬진강 백사장이다. 앙증맞은 호야등(남포등)을 들고 달빛이 비치는 은빛 모래사장을 걷는 것이 프로그램의 시작이다. 밀가루처럼 고운 강모래 감촉을 오롯이 느끼고 싶다면 맨발로 걸어도 좋다. 둥근 달이 떠있지 않거나 구름이 달을 가리더라도 낙심할 필요는 없다. 백사장 한가운데에 설치된 거대한 인공 달이 여름밤 운치를 책임진다.
인공달 주변에 피크닉 매트를 깔고 자리를 잡으면 지역 주민들이 진행하는 악기 연주, 시 낭송 등 다채로운 공연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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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동 달마중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등불을 들고 강가를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