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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에 봉사하는 마음으로
묵묵한 ‘사회공헌’ 한 길
1976년 창립해 대표적인 중견 종합건설업체로 자리매김한 요진건설산업(회장 최준명)은 주택 브랜드 ‘요진와이시티’로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고 있다. 올해 창립 45주년을 맞이하는 요진건설산업의 발자취에서 그동안 묵묵하게 펼쳐온 사회공헌활동이 눈길을 끈다. 그 선두에는 100년 기업을 꿈꾸며 혼신을 다해 경영과 나눔을 실천해온 ‘1세대 현역 건설인’ 최준명 회장이 있다.
- 글 구선영 사진 왕규태

“나는 누구한테 알릴 만큼 대단한 일을 한 인물이 아니에요.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 것에 혼신을 다한 것뿐 입니다.”
서울 강남구 소재 요진빌딩에서 만난 최준명 회장은 1976년 요진건설산업을 만든 창업주이자 지금까지도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1세대 현역 건설인’으로 정평이 난 인물이다. 신축년 새해에 89세(1933년생)를 맞이하는 최 회장의 모습은 정정했다. 악수를 건넨 그의 손이 엄청난 악력과 뜨거운 온기로 가득해서 ‘현역’이라는 수식어와 잘 어울렸다.
“혼신을 다하면 생각이 바뀌고 운명이 달라진다고 믿어요. 내 인생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최 회장이 인생을 살면서 혼신을 다해 온 것은 바로 배움과 건설업 그리고 나눔의 삶이다.

가난한 고학생으로 성장, 국가에 봉사 다짐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가난한 성장기를 보냈죠. 모두 다 힘들고 배고팠던 시기였고 모두 다 그런 세월을 살았으니 나만 특별히 어렵다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그래도 나는 국가와 교사의 도움으로 공부도 하고 밥도 먹었으니 감사한 일입니다. 내가 잘되면 국가에 봉사하겠다는 마음으로 억척스럽게 공부했어요.”
최 회장은 어린시절 원불교가 운영한 서울 소재 보육원에서 자랐다. 그곳에 가면 학교도 보내주고 밥도 먹여준다는 소리를 듣고 고향인 전남 영광을 떠났다. 초등학교를 나온 후에는 원불교가 세운 전북 익산의 중학교에 들어가 급사로 일했다. 당시 그의 성실함과 명석함을 알아본 교감이 수업료를 내주어 중·고등학교를 우등생으로 졸업할 수 있었다. 이후 고학으로 한양대학교 건축학과를 당당히 졸업했고 건설업과 긴 인연을 맺었다.
최 회장은 20~30대에 미군부대 공사를 주로 하는 동성상공에 입사해 현장소장으로 일했다. 당시 고 정주영 회장이 찾아와 함께 일하고 싶다고 제안했을 정도로 부지런함과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그는 기존 현장에서 맡은 책임을 다하기 위해 정 회장의 제의를 거절했다. 그러고는 17년만에 요진산업주식회사(현 요진건설산업)을 창립해 오늘의 중견건설기업으로 키워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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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명 회장은 2005년 학교법인 휘경학원을 인수하는 등 인재양성에 주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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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경학원 학생들과 함께하고 있는 최 회장.
“사람냄새 나는 사람으로 키우자”는 교육철학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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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 회장은 매년 어린이날이 되면 한국보육원생을 초청해서 뜻깊은 나눔행사를 펼친다.
사람 키우는 게 보람, 학교·보육원도 운영
한 푼 없이 대학까지 가게 된 최 회장은 소싯적 다짐을 잊지 않았다. 그는 한국 보육원(경기 양주시 소재) 설립자인 황온순 여사가 작고한 뒤 보육원 이사장직을 물려받아 부모의 그늘없이 자라는 아이들에게 아버지 역할을 하고 있다. “이사장직을 제의 받았을때도 그저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사회는 엄청나게 발전했지만 여전히 있지 않아도 좋을 곳들이 존재해요. 보육원도 그런 곳이죠. 나 역시 보육원에 보내질 정도로 어려웠지만 배울 기회를 얻었기 때문에 사람답게 살 수 있었어요. 아이들에게도 그런 기회를 주고 싶어서 애쓰는 겁니다.”
최 회장은 만 18세가 되면 퇴소해야 하는 보육원생들의 자립을 돕고 있다. 나라에서 지원하는 독립자금 500만원으로는 월세방을 얻기도 힘든 게 현실이다.
성년이 되어 자립을 시킬 때도 직접 신원보증을 해주고 계열사에 일자리를 마련해준다. 또 낮에는 회사에서 일해서 돈을 벌고 야간에는 대학을 다닐 수 있도록 학비를 지원하고 있다.
“회사생활도 배우고 대학공부도 해서 자격증을 취득하면 어디 가서든 일꾼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돼요. 아이들이 이 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대우받을 수 있도록 자립 능력을 만들어주었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최 회장은 궂은 일에도 아버지 자격으로 나서기를 서슴지 않는다. 병원비가 없어 퇴원하지 못하는 원생에게 한달음에 달려가기도 하고 경찰서에서 부를 때도 기꺼이 출석한다. 비록 성년이 되어 보육원을 떠났지만 언제든 힘들 때 돌아갈 수 있는 ‘집’이 되어주고 싶은 마음에서다.
최 회장은 인재육성과 장학사업에 숙명적인 사명감을 갖고 있다. 2005년 서울 휘경여중·고를 인수했으며 20년 넘게 전남 영광군 어린이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
최 회장이 생각하는 인재육성은 “사람 냄새 나는 사람으로 키우는 것”으로, 휘경학원 교사들에게 늘상 당부하는 말이다. “좋은 대학을 나오는 것은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의 일부이지 전부가 아니에요. 기술과 재능도 중요하지만 사람다운 사람이 먼저 되어야 합니다. 자기 할 일을 제대로 해내는 사람 냄새 나는 사람으로 성장시키는 게 가장 중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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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진건설산업은 추석과 설명절에 한국보육원을 찾아가 음식과 선물을 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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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에 본사를 두고있는 요진건설산업은 강원사회복지공동모금회로부터 고액기부자에게 수여하는 감사패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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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진건설산업은 용산복지재단 등 여러 재단에 사랑의 성금을 기부해 왔다.

나눔이 있어야 100년 기업도 있다
“회사가 나누지 않으면 오래가지 못한다”는 최 회장의 생각도 회사의 탄탄한 성장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는 오래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돈 벌었다고 주머니에만 쏙 넣는 것은 장사꾼에 불과합니다. 사업을 확장하고 여러 사람과 돈을 같이 써야 진정한 사업가가 아닐까요.”
최 회장은 평소 소신대로 오랜 기간 함께 일한 직원들에게 명예퇴직 후의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여러 계열사를 만들었다. 요진개발, 요진자산관리와 같은 건설업종 계열사는 물론이고 구로호텔, 몬드리안호텔, 여자프로골프단, 어린이 놀이시설까지 보유하고 있는 이유다.
지난해에는 시멘트 자급자족이 안 되는 미얀마에 시멘트 공장을 건설하고 학교를 건립할 수 있는 학교건립기금을 지원했다. 수도원 유휴 용지에 지어질 학교는 연면적 700㎡, 3층 규모로 학생 1,400명과 승려 260명이 이용하게 된다. 이밖에도 오늘의 그가 있기까지 도움을 준 원불교에 대한 지원도 아끼지 않는다.
“요진이 100년 기업이 되길 바랍니다. 내가 없어도 직원들이 열심히 이어나가길 바라죠. 아직은 정정해서 일 많이 합니다. 오늘도 평택 현장에 가야해요.”
매일 현장을 누비는 현장경영을 지켜온 최준명 회장. 혼신을 다해 성장하고 결과를 나누고 다시 성장하는 여전히 멋진 ‘1세대 현역 건설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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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월에는 미얀마 양곤 차욱탄 수도원을 방문해 학교 신축을 위한 기부금 1억원을 기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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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공헌활동의 일환으로 2010년 요진건설여자골프단을 창단, 한국 여자골프의 미래를 이끌어 갈 우수한 인재 발굴과 육성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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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글로벌 비즈니스 평화상 시상식에서 평화유지와 공공정책 참여부문의 공로를 인정받아 ‘종교평화 특별공로상’을 수상한 최준명 회장